‘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알아서 주거나 뺏어간 적 없는데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누군가 얼마나 못마땅한 짓을 일삼으면 그런 소리를 다 할까. 그 반대말은 ‘받는 것 없이 예쁜 사람’이겠다. 물론 그보다 훨씬 마음에 차는 건 ‘내가 가진 것을 얼마든지 내주어도 예쁜 사람’일 것이다.
동료교수가 부친상을 당해서 고창에 갔다가 후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전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후의 한적한 국도를 달리는데 이른 가을비가 참 예쁘게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 저녁에는 파전에 막걸리가 딱인데, 아니 그렇습니까?” 후배는 그렇게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 말뜻을 모르지 않았지만 가족모임이 잡혀 있어서 나로서는 그와 함께할 수가 없는 게 좀 아쉽고 미안했다.
“괜찮아요. 제가 아는 술꾼들 중에 어느 한 친구한테는 틀림없이 연락이 올 거예요. 아니면 뭐, 빗소리 안주 삼아 혼술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죠?” 이런 날 술 마시자고 연락하는 놈 하나 없다고, 가끔 투덜거리곤 했던 게 떠올라서 나는 빙긋 웃고 말았는데,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후배가 전화로 나누는 이야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후배의 친구 하나가 거의 1년 만에 전주를 다니러 왔다. 그 친구는 후배에게 이따가 저녁에 만나서 소주나 한잔 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후배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아이고, 하필이면 이 노릇을 어쩌냐? 사실은 우리 학과 선배 교수님 한 분이 부친상을 당하시는 바람에 문상을 하려고 지금 부산으로 내려가는 중이거든. 밤늦게나 내일 새벽에 돌아올 것 같아서 말야. 자네가 모처럼 와서 연락을 주었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나로서는 그 말이 좀 의아스럽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서둘러 끝낸 후배는 그런 내 속내를 눈치채고는 씁쓰레한 미소부터 내비쳤다. “제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나면 한마디로 피곤하고 짜증이 나서요. 듣는 사람 생각은 않고 지 자랑만 실컷 늘어놓기 일쑤거든요. 주식 투자를 해서 얼마를 벌었다느니, 상가 건물 세입자들이 월세를 제때 안 내서 골치가 아프다느니 하는 식이죠. 하긴 그 정도까지는 친구 사이에 못 들어줄 것도 없죠. 그런데 이 친구가 좀 취했다 하면 주위 사람들하고 시비 붙는 게 일이라서….”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은 애초부터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준 친구라 해도 그와 술 한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런 마음이 별로 안 드는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문자라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먼저 연락해 온 안부 문자조차 ‘씹어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전화 연락을 준 친구한테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낸 후배에게도 어쩌다 연락을 받으면 웬만한 약속은 뒤로 미뤄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왜 없겠는가.
문상을 마치고 돌아온 그날 나는 숙제 하나를 얻은 기분이었다. 나를 알고 있는 적지 않은 이들에게 나는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세상 그 어떤 일도 다 저 할 탓이라고 했던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미운 사람이든 예쁜 사람이든 ‘그들’의 생각을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일 게 분명했던 것이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