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꿈꿨던 일을 평생 원 없이 하고 사는 내 인생에 고마움을 느낍니다”덕유산 꿀벌시인 이봉명 씨(65). 시인은 1991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해 최근작 ‘가풀막’까지 시집과 산문집 8권을 펴낸 중견작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난생 처음 쓴 시가 학교 백일장에서 참방상(4등에 해당)을 받았어요. 소질이 있구나 싶었죠. 글 쓰는 것에 관심이 생기면서 학교에 있는 책이란 책은 다 읽었어요. 선생님들께 칭찬도 많이 받았고 그렇게 시인의 꿈이 싹튼 것 같아요”
첩첩산중 감성소년의 꿈은 어린이신문, 학생신문 등에 거의 매달 자신의 글이 실리면서 덩치를 키워갔다. “내가 쓰는 이것이 시가 맞나? 이 길이 과연 내 길인가?” 라는 딜레마에 빠져든 건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무 살 무렵. 멈춤 없이 이어져왔던 글 쓰는 일에 회의를 느끼던 그 때 그는 소설가 박범신 선생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시인이 초등학생 시절 괴목초등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아 왔던 박 선생은 소년 이봉명에게 ‘시 쓰는 즐거움, 책 읽는 재미’를 일깨워준 장본인이다.
“1980년이었을 거예요. 코흘리개 제자가 청년이 돼서 선생님을 다시 찾았지요. 답답한 마음에 편지로 생떼를 썼어요. 당신 때문에 이 길을 걷게 됐으니 책임지라고. 그러면서 제가 쓴 시 몇 편을 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스승은 어린 제자의 치기어린 투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시인의 길에 확신을 줬고 지금까지도 든든한 징검다리가 돼주고 있다.
시인 이봉명은 바로 그해 고향 무주에 발을 들인다. 혼자가 아닌 아내와 함께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꿀벌 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틈나는 대로 시를 써댔다. 벌통에 꿀이 쌓이듯 하나, 둘 작품이 늘기 시작했고 1991년 드디어 등단의 꿈을 이룬다. 1993년 지역의 문인들과 함께 ‘무주문학’을 꾸리고 문학강연회, 시인학교, 시화전(50회)을 개최하는 등 지금까지도 글쟁이로서의 단단한 삶을 살고 있다. 올해는 눌인문학회와 김환태문학기념회 설립에 기여한 공로와 무주작가회의, 전북작가회의 등 문학단체에서의 왕성한 활동을 인정받으며 무주군민들이 주는 ‘군민의 장’ 문화체육장 수상자가 됐다.
시인은 자연과 환경, 삶 전체에 자신을 투영하며 글을 쓴다고 한다. 양봉을 업으로 삼은 시인에게 ‘꿀벌’에 관한 작품(50여 편)이 유독 많은 이유다. 그중 어머니에 대한 단상이 담긴 ‘꿀벌8’은 장애인문학상 수상작(1999년)이고 마당에 핀 풀꽃을 생각하며 썼던 ‘풀꽃’은 노동부장관상(2000년)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시를 쓴 건 참 잘한 일인 거 같아요. 내일 모레면 일흔이니 이젠 좀 내려놓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래도 신춘문예의 꿈은 미련이 남네요” 너털웃음 쏟아내는 시인의 어깨 너머로 가을장마가 피워낸 뽀얀 안개가 산등성이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