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곳곳에 존재하는 친일잔재

전북 친일잔재 건물 131곳…군산 30곳 · 전주 27곳 등
진안 강정리 근대한옥 등 잘못된 해석으로 피해 건물
학계 “항일운동 중심지 철거 마땅…교육적 활용 고심”
“친일건축 낙인 전, 정확한 고증통한 연구 선행되어야”

일제에 억압받고 핍박받았던 세월을 이겨 낸지 어언 76년. 하지만 전북 곳곳에는 여전히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일제의 흔적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 곳곳에 침투했다. 최근 왜색논란으로 문제가 된 우림교 조형물이 그 결과다. 전주시는 전문가 의견과 주민들의 입장을 반영해 문제가 된 조영물을 소폭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도내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의 일제의 흔적을 놓고 철거와 교육적인 목적으로서의 현상유지를 놓고 학계는 여전히 서로 대립하고 있다.

 

현황

30일 전주시 덕진공원 내 취향정(醉香亭)을 비롯한 친일잔재가 시내 곳곳에 침투해 있다. /사진 = 조현욱 기자

30일 전주시 덕진구에 위치한 덕진공원 내 취향정(醉香亭). 덕진공원에 있는 연못이 보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 취향정은 일제의 잔재다. 취향정은 ‘연꽃향에 취한다’는 의미로 일제강점기 당시 전주 지역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박기순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고자 세운 정자다. 박기순은 국유지에 취향정을 설치하면서 이곳에 사람들을 모아 시회(詩會)를 열면서 개인적인 공간으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박기순의 사유화에서 해방 이후 전주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박기순은 일제강점기 당시 중추원참의, 전주 농공은행장 등을 역임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록됐다. 즉 덕진공원의 취향정은 친일파가 만들어 논 일제의 잔재인 셈이다. 취향정 앞에 있는 ‘취향정기(醉香亭記)’도 일제의 잔재다. 취향정기는 취향정을 건립하게 된 과정을 기록한 비석이다.

취향정 내 현판도 친일파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취향정에 걸려있는 현판은 총 18개 김현섭(金顯燮)의 시이다. 이외에도 김양근(金瀁根), 주영조(朱榮祚), 박영기(朴永基), 강진옥(姜眞玉), 박영래(朴榮來), 강주산(姜舟山), 박영숙(朴英淑), 김성삼(金成三), 송한초(宋漢草), 김창섭(金昌燮), 박기순(朴基順), 김기0(金琪0), 정내화(鄭來和), 임병찬(林柄讚)을 포함한 6명의 시, 김제덕(金濟悳), 「근차취향정운(謹次醉香亭韻)」 이라는 제목 아래 17명의 시 각 1수, 시회 참여자 16명의 시(詩) 각 1수 등이 걸려있다. 이들이 적어 논 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찬양하고 있다.

전북도가 지난해 발표한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전북의 친일잔재 건물은 총 131곳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군산이 30곳, 전주 27곳, 고창 16곳, 익산 15곳, 완주 11곳, 김제 8곳, 부안 6곳, 정읍·진안 4곳, 남원 3곳, 무주·임실·순창 각각 2곳, 장수 1곳 등이다.

친일잔재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장소로는 진안 강정리 근대한옥(전영표 가옥)이다. 전영표 가옥은 원강정마을 명당자리에 위치해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보기 드문 2층의 근대 한옥으로 지여졌다. 한국은 2층 한옥을 짓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영표 가옥은 풍수지리학적으로 그 산의 기운이 매우 강해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 2층으로 지어졌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남해경 전북대 건축학과 교수는 “진안 강정리 근대 한옥은 2층으로 지어지긴 했으나 2층을 사용하지 않았고, 풍수지리학과 건축학이 결합된 건물로 봐야한다”면서 “일제의 잔재로 표시하긴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안

전북 곳곳에 남아있는 131곳의 친일잔재. 우리는 어떻게 이 잔재를 해결해야 할까. 학계는 일재잔재의 청산은 당연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활용방안을 고심한다.

이동희 예원예술대학 교수는 “친일 잔재에 대한 기준점으로 항일운동을 꼽을 수 있다”면서 “항일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곳에서는 친일건축물을 남겨놔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다만 여럿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아픈역사를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법도 생각해야한다”면서 “무조건적인 철거는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해외사례를 보면 그 활용법을 배울 수 있다. 핀란드 헬싱키 원로원광장에 위치한 알렉산드르 2세 동상, 독일 베를린 유태인박물관 등이 대표적이다. 아픔을 화합과 치유 그리고 아픈 역사를 다시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으로 내세웠다.

전북에서도 이를 잘 활용한 곳이 있다. 군산이다. 친일건축 30곳이나 존재하는 군산은 블랙투어리즘이라고도 불리는 다크투어리즘을 적용해, 관광적 효과를 극대화 하고, 또 하나의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영기 전주대 관광학과 교수는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존재하던 건축물을 잘 보존해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한 도시”라면서 “왜색이라고 해서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아픈 역사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안내문등을 통해 교육적 효과 및 관광효과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일건축을 규정하기 전, 정확한 고증과 연구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건축학계에서는 연구가치가 큰 건축물도 많은 만큼 일방적인 친일건축으로 지목보단 철저한 고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

남해경 교수는 “진안 강정리 근대한옥은 풍수지리학과 건축학이 접목되면서 그 연구가치가 크다”면서 “2층 건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인 친일건축이라는 낙인을 찍기 전 역사학자와 건축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정확한 고증을 거쳐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