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완주군 구이면에 있는 유휴열 미술관. 이 곳에서는 2인조 메세나(Mecenat, 기업 등이 문화예술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용어) 친구가 모은 전북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품고 있다.
유휴열 화백의 친구 정웅기 ㈜하이엘 대표이사가 평생 모은 작품을 선보이는 ‘정웅기 소장품 展’이 열리고 있어서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다.
전시장에는 지역 작가들이 남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출품년도를 알 수 없는 작품부터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작품 80여점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작가도 꽤 있다.
그만큼 작품의 장르도 다양하다. 유화, 금속공예, 한국화, 목판화, 염색 등으로 구현한 작품이 전시장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연대별로 고루 수집한 고(故) 박민평의 작품, 고 지용출의 목판화, 고 하반영의 유화, 산민 이용의 서예를 한 자리에서 만나는 흔치 않은 경험도 할 수 있다.
전시장의 주인, 유휴열 화백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혼례도(婚禮圖). 빠른 속도감과 힘을 지닌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춤꾼과 시집가는 가마 등을 묘사하고 있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화려한 색감이 느껴진다. 작품은 주체할 수 없는 모종의 기운으로 넘친다.
전시장과 연결된 카페테리아 ‘카페 르 모악’은 공간의 운치를 더해준다. 이 곳에도 유 화백이 직접 빚은 자기 그릇 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진열돼 있다. 유가림 관장과 최명순 사단법인 모악재 이사장도 여기서 만났다. 유 관장은 유 화백의 딸, 최 이사장은 부인이다.
유 관장은 이번 전시회의 운영방식을 설명해줬다. 그는 “정웅기 이사장님의 소장품이 워낙 많다보니 한꺼번에 선보일 수 없다”며 “일정에 따라 작품을 번갈아가면서 진열하고 있다”고 했다.
전시장 밖을 나가면 유 화백의 작업실과 작품이 모인 수장고가 연결돼 있다. 유 화백은 이날 수장고와 작업실 순으로 소개해줬다.
수장고에는 유 화백이 제작한 입체 작품을 비롯해 여러 장르의 그림 작품이 모여 있다. 작품이 너무 많아 어지러운 느낌도 들지만, 해묵은 세월이 젖어들어 빚어내는 외양도 삼삼하다. 유 화백은 “지금도 작품수가 많아 고민인데, 해가 갈수록 수장고에 계속 쌓여만 가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실은 화백이 보낸 인고의 세월이 느껴진다. 공간은 유 화백이 그린 작품이 둘러쌓고 있고, 오른편에는 그가 사용하는 재료들이 놓여있다. 정중앙에 있는 선반 위에는 그가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 놓여 있다. 바닥과 곳곳에 물감이 묻어 있지만, 이 역시 또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유 화백은 “매일 이곳에 출근해서 작업한다”며 “작업실 바로 앞에 집이 있다 보니 작품 활동하기가 좋다”고 말했다.
친구인 정웅기 회장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유 화백은 “그 친구 덕분에 전북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며 “명예욕도 없고 물욕도 없는 사람이다. 친구이기에 앞서 정말 훌륭한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메세나’라는 개념이 정착되기도 전에 지역 예술가들을 도우며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며 “이번 전시회는 그가 축적한 눈부신 문화적 자산인 ‘정웅기 표 소장품’을 보여주는 자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