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고, 고향 장수지역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1956년 4월 2일, 우리들의 명문 장계중학교가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검은 숯덩어리만 남긴 간밤의 화재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까지 삼켜버렸고, 온 동네와 시장바닥을 울음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이니까 장계에 백화여고, 장계유니텍고등학교, 마사고등학교가 있지만 그 때 중고교 통틀어 달랑 하나뿐이었던 장계중학교는 우리의 꿈을 키우는 배움의 전당이었다. 불에 타버린 학교 재건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끝났어도 휴전일 뿐이었기에 양측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상태였다. 정부나 지역사회의 장계중학교 화재 수습은 뒷전이었다.
이같은 사정을 뒤늦게 접한 장계 출신 이희권 장군(9사단장)에 의해 장계중학교가 화재 발생 4개월 만에 재건된 것은 기적이었다.
이 장군 차남 이종택 씨에 따르면 당시 이 장군은 “지금 아이들의 구원 요청을 못 본 척 했다가 훗날 그 이이들 앞에 어떻게 나설수 있겠는가.” 라며 학교 재건에 공병대 투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장군은 ‘역사적으로도 어려울 때 군이 나섰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장수지방의 가을은 여우 꼬리보다 짧아서 시월은 한낮도 냉기가 찾아온다. 덕유산과 장안산이 둘러싼 해발 400m 장계지역은 추위가 빨리오기 때문에 공사 기간을 1개월이라도 단축해야 했고, 그만큼 군인들의 수고가 컸다. 휴전선에서 근무하는 이 장군이 고향에서 벌어지는 공사 진척 상황을 매일 보고 받고, 독려하는 일은 주요 일과였을 것이다.
가을꽃이 지천으로 만발한 그해 9월 10일 드디어 학교 준공식이 열렸다. 감격과 기쁨은 동네마다 출렁이며 9월의 적막을 깨뜨렸다. 밤을 지새우며 풀 먹여 다려놓은 새 옷 입고 교실에 앉아 내다 본 창밖의 꿈, 주민들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다.
이희권 장군은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 전역하기까지 군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10여 년 전 병마와 싸우다가 운명하시기까지 고향 걱정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처럼 고향사랑이 지극했던 이 장군을 추모하는 기념비 하나 없다는 사실은 고향의 많은 이에게는 작지 않은 마음 빚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우리가 답을 할 차례가 됐다. 그동안 그분의 공적에 대한 추모의 온기가 퍼지면서 재경장수군민회 이상인 전 회장과 박종천 전 회장, 원병희 선배, 강홍순 총무, 그리고 필자가 주동이 되어 기념비 건립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크고 작은 정성이 모아지고, 멀리 카자흐스탄에서 보내온 성금도 답지되었다. 서울에서, 고향에서 소중한 성금을 쾌척해 주시는 손길에 매번 감격 말고는 답 글조차 쓰지 못했다.
내년 여름 장미가 만발한 때 이희권 장군님을 위한 기념비를 장계중학교 교정 양지바른 곳에 세워 제막할 예정이다. 이게 고향 사랑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재경 장수군민회 부회장 김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