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천 집행위원장 “‘세계사 속에 유래없고 독창적인 전주소리축제’로 관념 변해야”

4일 소리축제 폐막 후 인터뷰

박재천 전주소리축제 집행위원장

지난 3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막을 내린 가운데, 박재천 집행위원장이 닷새 간의 일정을 마친 소회를 밝혔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예술제로의 실험’을 표방해, 전통음악의 원형과 변형을 시도했다. 당초 공연도 150개에서 26개로 줄여 실내 중심으로 배치했다. 임펙트가 강한 공연을 엄선했고, 이에 따라 관람객의 집중도도 높아졌다는 게 박 위원장의 평가다. 다음 축제부터는 전주의 역사·문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포용할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20주년을 맞은 소리축제를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지난 2018년 서울 세종문화회관까지 대관할 정도로 20주년 축제를 성대하게 준비했으나,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축제 진행방식을 미디어·온라인 생중계로 전환했다. 성과가 괜찮았다. 다른 나라와 지역에서 많은 응원을 보내주는 등 현장 중심의 운영방식에서 보지 못했던 현상이 있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올해는 애초부터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코로나19상황이 여전해 공연장을 전면개방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진솔하게 20주년을 돌이켜보는 방향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많은 공연 프로그램을 덜어내고, 레거시(legacy, 과거의 유산)를 품고 있는 공연만 엄선했다. 해외 공연 역시 아스트로 피아졸라만 초청하기로 결정했다. 비유하자면 많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뷔폐에서, 쉐프가 엄선한 요리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 올 공연프로그램의 코드를 ‘선택과 집중’으로 보면 되는 건가.

“그렇다. 그러나 선택의 폭을 정하긴 어려웠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김치, 깍두기, 물김치, 열무김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할 때 망설여지는 상황과 같다. 다행이 26가지를 골라내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공연하나하나마다 예술성이 응축돼 있고, 전통과 현대, 전국과 지역, 창작과 변형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질이 높아졌고, 마니아층 이외 새로운 관객이 진입했다.”

 

- ‘새로운 관객’이 가지는 의미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팬덤도 빨리 변한다. 요즘 친구들은 팬덤이 빨리 바뀐다. 그만큼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시류에 맞춰 판소리와 결합한 춤 공연인 ‘다크니스 품바’(모던 테이블)와 국악과 스트리트 댄스를 융합한 ‘HIP 合’(국립현대무용단)을 선보였다. 덕분에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친구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초 서울에서만 볼 수 있던 공연을 전주에서도 볼 수 있으니 온 것이다. HIP 合을 찾은 팬들을 어떻게 유지할 지가 추후 과제다, 절대 그들을 놓지 말아야 한다.”

 

- 개막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가장 아날로그적이었던 소리축제가 디지털과 결합하면서 두 형식의 공존을 고민하게 됐다”고 하셨는데, 축제를 통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찾으셨는가.

“아날로그는 정돈된 예술·문화적 요소인 반면, 디지털은 날 것 그대로이다. 즉 전통예술은 새로운 문화발전 요소인 디지털에 소스를 제공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아날로그는 절대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현대음악을 하는 방탄소년단(BTS)이 자신들의 퍼포먼스에 오고무를 활용해서 선보였다. 이때도 오고무가 ‘한국 전통춤’이라는 불변의 진리는 적용된다. 전통 소리꾼이 뉴욕에서 공연을 할 때도, 자신만의 소리는 지키면서 울려 퍼지게 한다. 즉 아날로그가 올곧고 신선하게 유지하는 소스라면, 디지털은 이 소스를 가지고 가는 존재다.”

 

- 이번 소리축제가 남긴 의미를 짚어보신다면.

“‘소리’가 내포하는 개념을 확장시킨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에 소리라 하면 ‘판소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관점에 대해 소리는 song이 되고 sound도 될 수 있다고, 몇 년전부터 반론을 제기했다. 올 축제에서 예술적인 음악에 방점을 찍으면서 내 관점이 현실화됐다. 전주가 가진 레거시를 통해 소리가 송을 비롯해 사운드까지 커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다른 축제와도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

 

- 앞으로 소리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관념부터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세계 속의 전주소리축제’가 아니라 ‘세계사에 유래가 없고 독창성을 가진 전주소리축제’로 변해야 한다. 전북, 특히 전주는 세계에 내세울 만큼 당당하고 좋은 레거시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