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도서관들의 변신이 새롭다. 더 이상 지식과 정보를 얻는 역할에만 안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미 세계의 여러 도시들이 앞장서 변화를 주도하고 있으니 도서관의 기능이 어디까지 이를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 선봉에는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뉴욕공립도서관이 있다. 뉴욕공립도서관은 본관을 비롯해 90개가 넘는 분관을 가진 미국 최대의 공공도서관이지만 주목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격식을 깨트린 명사들의 특강, 인종과 여성 환경 노동 등 민감한 사회이슈를 다루는 토론모임, 저소득층과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예술 공연과 취업박람회 등의 다양한 기능과 뉴욕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분관들이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 기획해낸 서로 다른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덕분에 뉴욕공립도서관은 도시공동체의 중심이 됐다.
‘지식의 창고’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능을 확대해가는 이런 도서관들과는 달리 오랜 전통으로 특화된 기능을 지켜가는 도서관도 있다. 1750년에 지어진 스위스의 장크트갈렌 수도원도서관도 그 중 하나다. 유럽에는 같은 성격을 가진 수도원 도서관이 여럿 있지만 장크트갈렌 수도원도서관의 면모는 특별하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꼽히는 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서는 16만권. 스위스의 국보급 문서와 책, 악보가 이곳에 모여 있다. 수도사들의 귀중한 필사본을 관리하는데 특별한 노력을 쏟아온 결실이다. 도서관과 함께 문화와 학문의 본산으로 중세 유럽에 이름을 떨쳤던 수도원은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 귀한 문헌과 미술품을 온전히 품어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이 도서관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특별한 기능이 있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얻거나 문화적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 영혼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영혼의 치유소’로서의 기능이다.
우리에게도 반가운 풍경이 있다. ‘책이 삶이 되는 도시’를 내세운 전주가 하나둘 더해가고 있는 작은 도서관들의 행렬이다. 동네 골목길에, 숲과 산길에 놓인 이 작은 도서관들은 오랜 전통도, 거대한 규모도 갖고 있지 않지만 시민들의 일상으로 들어와 작은 행복을 안겨주는 선물이 됐다. 그중 유독 그 존재를 빛내는 도서관이 있다. 완산구 평화동 학산 숲길에 놓인 ‘학산 숲속 시집도서관’이다. 알고 보니 자작나무에게 곁을 내어준 너와지붕이 잘 어울리는 작은 도서관, 시로 가득 찬 공간에 이미 푹 빠진 이웃들이 적지 않다.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는 전주의 작은 도서관 행렬이 더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