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량, 상량식, 상량문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신축하는 전북대학교 컨벤션센터가 멋진 모습을 드러내며 한옥 세 채에 상량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8일에는 주건물인 컨벤션실의 상량식이 있었고 10월 중에 나머지 두 건물에 대한 상량식도 가질 것이라고 한다.

상량은 한옥 구조의 맨 윗부분에 해당하는 종도리(宗道里)를 이르는 말이다. 종도리는 마룻도리, 마룻대라고도 하는데 서까래를 걸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재목으로서 상량을 올린다는 것은 곧 집의 골격이 완성되었다는 뜻이며 이를 기념하는 의식이 상량식이다.

상량의 한 면에 건물이 영원히 보존되고 사는 사람이 큰 복을 받기를 축원하는 상량문을 쓴다. 양 끝에는 대개 ‘용(龍)’자와 ‘귀(龜)’자를 쓰고, 이어 상량을 올리는 연월일시를 쓴 다음, 그 아래에 두 줄로 축원의 문장을 써 넣는데 이게 곧 상량문이다. 대개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비지상지오복(備地上之五福)’이라고 쓰는데 “하늘의 3광(해, 달, 별)에 부응하여 땅위에 5복을 갖추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상량문은 반드시 앞 구절과 뒤 구절의 서로 대응하는 각 글자(應-備, 天-地, 三-五, 光-福 등)가 같은 품사로 이루어지는 대구(對句)로 지어야 한다. 집을 짓게 된 내력이나 의미를 자세히 기록하여 보전하고자 할 때는 장문의 상량문을 따로 지어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상량에 홈을 파서 그 안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이런 상량문은 훗날 그 집의 역사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필자는 전북대학교 컨벤션센터에 들어서는 세 채의 한옥에 상량문을 짓고 또 글씨를 썼다. 컨벤션실의 상량문은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이집천하만사함초상(集天下萬士咸招祥), 비지상지오복(備地上之五福)이성세계일화공장춘(成世界一花共長春)’이라고 지었다. “하늘의 3광에 부응함으로써 천하의 많은 선비들을 모아 함께 상서로움을 불러들이고, 땅위의 5복을 구비함으로써 세계가 하나의 꽃을 피워 다 함께 봄날을 오래 누리세”라는 뜻이다. 앞부분의 ‘응천상지삼광, 비지상지오복’은 상용문투를 그대로 따오고 뒷부분만 지어 붙였다. 컨벤션실이 장차 천하의 학자들이 모여 세계평화를 논의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글이다. 커피숍 건물에는 상용문투 뒤에 ‘득광명정대지정신(得光明正大之精神), 온함영저화지아취(蘊含英咀華之雅趣)’라는 상량문을 썼다. “광명정대한 정신을 얻고, 좋은 문장을 가슴속에 새기는 고아한 흥취를 쌓아가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세계의 석학들이 커피숍에 모여 광명정대한 정신으로 고상하게 담론하기를 축원하는 마음으로 지었다. 또 다른 한 건물에는 ‘양백년청풍지상금(養百年淸風之爽襟), 개만대태평지성세(開萬代太平之盛世)’라고 썼다. “영원히 맑은 바람이 부는 상쾌한 가슴을 함양하고, 만대로 이어지는 태평성세를 열게 하소서”라는 뜻으로 천하의 학자들이 청백한 마음으로 태평성세를 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혹자는 굳이 한문으로 써야할 이유가 뭐냐고 할지도 모르나 한문이 아니고서는 좁은 공간에 이처럼 함축적인 말을 써넣을 수 없다. 우리에게 한문은 영어권의 라틴어와 같은 의의가 있음을 헤아려 한문을 내치기보다는 오히려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장 과학적인 소리글자인 한글과 의미심장한 뜻글자인 한자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큰 복을 받은 나라임도 자각해야 할 것이다.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