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 가을날 정취가 듬뿍 담긴 시집의 제목이다. 이 멋진 제목의 시집은 오지나 다름없어 ‘산속의 섬마을’이라 불리는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의 시’를 엮은 것으로, 그들이 시인이 된 사연은 특별하다.
삶이 녹록지 않았던 산골 마을에서 별다른 존재감 없이 살아온 동상면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시집은 “탈속한 듯 깨끗한 심성과 꾸밀 줄 모르는 감성과 도저한 애향심 위에 우리에게 친숙한 농경 언어나 토착 정서의 때때옷을 입혀놓은 시편 하나하나가 사뭇 감동적인 독후감을 안겨 준다.”는 윤흥길 작가의 추천사를 훈장처럼 달고 있다.
그 시심이 든 동상면은 척박한 산골이지만, 고종 임금에게 진상한 감으로 고종시라 불리는 씨 없는 감과 동상곶감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즈음의 마을 어귀는 고운 감이 나무에 꽃처럼 달려있고, 곶감 말리는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동상면은 완주군 3읍 10면의 하나이다.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고산 읍내 동쪽에 자리하여 동상이라 이름 붙었고, 1914년 대아리, 수만리, 사봉리, 신월리 4개 리로 개편되었다.
마을의 자리가 초승달 모양과 같다 하여 이름 붙은 ‘신월리’는 옛날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소가 있어 이름 붙은 용연과 장군대좌혈의 명당이 있다는 풍수지리에서 유래한 검태가 있다. ‘사봉리’는 마을 뒷산의 이름 사봉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봉은 이 산이 옆 마을 검태 뒷산의 장군대좌혈 명당자리 장군의 말이 먹이를 먹는 것과 같은 형상이라 붙은 이름이다. 이 마을 위에는 옛날 먹을 만들던 곳이 있어 마을 앞 시내가 먹물과 같아 유래된 묵계가 있다.
‘수만리’는 조선 중엽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이 마을을 지나가다 “이곳은 장차 물이 가득 차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 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대아리’는 일제강점기에 저수지를 막기 위하여 마을을 옮겨 새로 붙인 이름이다. 원래 큰 골짜기라 큰골이라는 이름의 ‘대실’이었으나 대실마을은 대아 저수지 속에 잠겨 있다.
옛 지명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설화 속에는 그 땅에서 희노애락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상면은 만경강의 첫물을 내는 밤샘을 품은 곳으로, 샘물이 땅을 적시며 굽이굽이 흘러 평야 지대의 젖줄이 되어 풍요로움을 건넸지만, 물을 대는 농수로를 내기 위해 대아저수지를 만들면서 큰 물골이 정든 고향을 수장시켜 버린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을 겪고 게다가 퇴각하지 못한 북한군이 산속으로 숨어들어 빨치산의 거점이 되면서 산골 마을 동상면은 여러 굴곡을 겪었다. 그렇다 보니 척박한 마을에서 모든 일을 겪은 어르신들은 홍시같이 말간 웃음을 지으며 추억에 잠기지만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응어리를 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산골 마을 오지사람이라 불리던 동상면 사람들이 시인이 되었다니 윤흥길 작가가 감탄하며 시집의 서평을 써 줄만 하다.
시집이 나오기까지에는 박병윤(전 동상면장, 1969년생)의 역할이 중요했다. 동상면 수만리 단지마을 출신의 박병윤은 고향에서 유년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가뭄이 들어 대아저수지에 잠겨 있던 마을이 모습을 나타내면 신바람 나게 달려가 비밀장소에서 개구지게 놀던 그였다. 그 시절의 추억은 훗날 면장이 되어 찾아온 박병윤에게 지역의 이야기를 엮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과 “마을에서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집을 내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일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시를 쓰기는 힘들었다. 글로 옮기지 못해 구술 형식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어르신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작년 8월부터 7개월 동안의 휴일에는 이야기를 찾아 17개의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고 채록해야 했다.
5살 어린이에서 100세 어르신까지 함께 울다 웃으며 마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묻어 둔 보석 같은 사연을 캐내 132편의 시로 엮어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는 감물 촉촉이 들인 시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내가 무슨 시를 낸다 혀~”라며 손사래를 쳤던 동네 어르신들은 면장이라는 직책보다는 같은 마을 최순덕(1933년생)의 살가운 넷째 아들에게 점차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다섯 살의 박채언 어린이는 안아달라고 월월거리는 강아지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내가 백 살잉께...”라며 시어를 튼 백성례(1921년생) 할머니는 도려낸 땡감 자국같이 닳고 닳은 구구절절한 한평생의 사연을 풀어냈다. 아들 유경태는 “체기처럼 얹힌 한 / 삭히고 또 삭이면서 살아오신 어머니. 언제나 맑고 고운 마음만 / 홍시감 씨처럼 / 톡톡 뱉어내시는 울어머니”라는 시를 썼다.
“암것도 바랄 게 없고 / 그냥그냥 웃고 살지 / 아들딸 걱정할까 아플 것도 걱정이여”라는 말이 시가 된 시집을 받아든 백성례 할머니는 “속에 쌓아놓은 응어리가 동장군 풀리듯 풀려나간 것 같소. 살아온 이야기 다 풀어내니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라며 홍시같이 말갛게 웃었다.
전국 8대 오지로 꼽혔던 산골 마을은 이야기 구슬이 꿰어지며 시인마을로 거듭났다. 가을이 무르익는 시기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는 시집을 들고 홍시가 어우러진 시인마을 언저리에서 정겨운 미소를 건네는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