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농협 구매담당 직원의 8억 원대 횡령 사고로 물의를 빚은 전주농협이 이번엔 횡령 손실금을 직원들에게 부담하도록 책임을 전가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노조는 조합장이 직원들에게 강제 부담시키고 있다면서 직장 내 갑질의 끝판왕이라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반면 조합장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사건의 발단은 전주농협의 농약 구매 담당 직원이 지난 2월부터 6월 사이 농약 구매 물량과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8억 1000여만 원을 횡령하면서 비롯됐다. 이 직원은 농약 구매 대금을 실제 지급해야 할 금액보다 많은 액수를 업체 계좌에 입금한 뒤 실수로 잘못 입금됐으니 차액을 계좌 이체해달라는 수법을 통해 농협 돈을 챙겨왔다. 하지만 농협 측에선 이런 대규모 횡령 사실을 농약 공급업체 직원이 발설하기 전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농약 거래대금의 과다 지급과 반환 요구를 반복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농약공급업체 직원이 전주농협의 다른 구매 직원에게 이러한 사실을 얘기하면서 농약 구매담당 직원의 횡령사건이 드러나게 된 것.
문제는 8억여 원에 달하는 횡령 손실금을 충당하기 위해 농약 납품업체와 농협 직원들에게 이를 부담시키면서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노조에 따르면 8억 1300만 원의 손실금 중 횡령 직원이 1억여 원을 변제했을 뿐 나머지는 농약판매업체에 2억여 원을 부담시키고 3억여 원은 농협 직원들에게 강제 부담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농약판매업체들은 농협 측의 요구가 부당했지만 계속 농약 거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 직원들에게는 직급별로 변상금 모금액이 정해졌다. 지점장 300만 원에서부터 기능직 50만 원까지 직급별 모금액을 설정하고 조합장과 임원들이 지점장 회의를 통해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농협 측의 이같은 처사에 슈퍼 갑질이라며 농협 본점 앞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반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임인규 조합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잘못한 일이고 농민들한테 도움을 주기 위해 모금 안내를 했다. 직원들 누구한테도 강요하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주농협의 대규모 농약 구매대금 횡령사고는 내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원인이다. 수 개월새 통상적인 거래대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빠져나가는 데도 이를 전혀 알지 못한 것은 관리자들의 책임도 크다. 공자께서도 책귀어장(責歸於長)이라 했듯이 횡령사고의 최종 책임은 그 조직의 장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