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그린플레이션

한경수 한국은행 전북본부장

한경수 한국은행 전북본부장

가을이 짧아졌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출근을 한다. 과거와 달리 체감상 가을은 이제 한 달이 채 안 되는 것 같고, 기후변화는 피부로 느껴질 만큼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2015년, 전 세계 195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협약을 파리에서 채택했다. ‘파리협약’이라 부르는 이 협약을 지키기 위해 현재 세계 각국은 2050년을 전후로‘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EU와 미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탄소배출권거래제, 탄소세 등 시장기반 정책이 시행 중이며,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등의 직접규제 정책과 전기차 및 신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 구축 등의 대규모 공공투자도 계획되어 있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석탄발전 축소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더불어 산업, 건물, 수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시나리오가 마련되었다. 전주시의 경우 2050년 탄소중립도시를 실현하기 위해 생태교통 인프라 구축, 탄소 저감을 위한 에너지 전환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주시는 이미 작년부터 수소시내버스를 국내 최초로 도입하여 운영하는 등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펼쳐왔다.

하지만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물가의 지속적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소위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 대표적이다. 이는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을 의미한다. 최근 각국의 친환경 정책 및 규제가 주요 원자재의 공급 부족 현상을 초래하면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12월말과 비교하여 금년 9월말 천연가스 가격은 400% 이상, 석탄도 290% 이상 급격히 상승하였으며, 국제유가도 50% 이상 상승하였다. 알루미늄, 구리, 니켈 등 재생에너지 발전 및 전기차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 가격도 크게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전북본부가 매월 발표하는 전북지역 기업경기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체들이 느끼는 경영애로사항 중 ‘원자재가격 상승’이 금년 5월부터 지금까지 줄곧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등과 관련하여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키기 위한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면서 국내 생산설비 신·증설 중단, 해외 이전 및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제조업 비중이 높다는 점도 이러한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반면,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이 새로운 경제 질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느 입장이든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필요성은 전제되어 있다. 다만, 기업 부담 및 그린플레이션 등 전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과 목표기간 등에 대한 이견이 존재할 뿐이다. 이에 대한 다양한 토론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장산의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좀 더 길어지기를 기대해본다. /한경수 한국은행 전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