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가 넘던 마을은 10가구도 채 남지 않았다. 한 집 건너 빈 집이다. 그것도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아이 울음소리는커녕 60대가 마을에서 가장 젊다. 초등학생만 40~50명이던 마을에 지금은 학생 한 명 없다. 4킬로 남짓 위치했던 초등학교가 폐교된 지 20년이 넘었다. 100년 가까운 역사에 전체 학생 수 2000명에 이르던 학교였다. 어릴 적 고향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내가 살던 마을 이야기지만, 전북지역 농촌마을이 거의 비슷한 풍경일 게다. 이렇게 쇠락한 농촌마을을 사람 소리 나는 곳으로 다시 돌릴 수 있을까.
정부가 최근 전국 89개 기초지자체를‘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하고, 내년부터 매년 1조 원씩 10년간 지방소멸 대응기금을 집중 투입할 계획을 밝혔다. 또 국고보조사업 선정시 가점을 주는 등 행·재정적 지원을 해 인구 소멸의 위기에서 탈출하는 것을 돕기로 했다.
정부가 직접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 상황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인 조치다. 그러나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에 경고음이 커진 게 어디 어제오늘의 이야기인가. 지방소멸 대응기금 얼마로 과연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을 구할 수 있을까.
전북인구동향만 따져보더라도 별 실효성이 없을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전북인구는 1966년 최대치일 때 252만3708명이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10% 이상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180만 명 선도 무너졌다. 감사원은 2017년 인구를 기준으로 전망한 50년 뒤 전북인구는 118명, 100년 뒤 48만 명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100년 뒤 우리나라 예측 인구를 1510만 명으로 전망하고 있어 전북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인구소멸지역에 국한된 대응책이 미봉책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지역의 인구감소 원인은 되새김질이 필요 없을 만큼 분석됐다.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 일자리 부족, 수도권 집중화 등 하나같이 해결이 쉽지 않은 구조적 문제들이다. 출산율을 높이려고 정부와 지자체마다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으나 성과가 없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고령화는 불가피하다. 대기업 본사가 수도권에 집중된 나머지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나마 정부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수도권 집중을 막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 정부가 과연 진정성 있게 수도권 집중을 막는 정책을 펴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5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으로 정하고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수립했다. 그럼에도 지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실행이 있었는지 기억할 만한 게 별로 없다. 근래 메가시티 구축 계획이 나왔으나 전북에 오히려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 또 다른 인구블랙홀로 농촌지역의 인구 소멸을 앞당길 우려마저 나온다. 수도권 3개 신도시 건설이나 GTX(수도권광역 급행철도) 건설 등은 수도권 집중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대신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역이전은 현 정부에서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대선을 앞두고 지역간 경쟁을 의식한 나머지 ‘혁신도시 시즌 2’조차 열지 못하고 있다. 시즌 2를 마무리하고 다음 정부에 시즌 3를 기대하는 지역민들로선 실망과 허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농촌지역의 인구감소는 중소도시에 이어 대도시 인구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와 같은 대도시 중심의 발전정책이 이를 더 부추길 우려가 크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지역소멸 문제와 지역균형발전에 얼마만큼 의지를 갖는지 지켜볼 일이다. 옛 고향 모습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고향을 간직해야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