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명언’이라는 이름의 짧은 몇 마디 말을 적어 붙인 작은 팻말이 즐비하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 아닐까. 짧은 시간이라도 허투루 쓰지 말고 그 안에 담긴 귀한 뜻을 차돌처럼 새겨 실천하라는 뜻이리라.
‘어떤 가치 있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 날, 그날은 잃은 날이다.’ 어느 휴게소에 들렀다가 눈앞에 적혀 있는 이 ‘명언’을 읽었다. 그런데 다른 것과 달리 이 말은 어찌 된 일인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버스에 올라서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짧은 문장에 ‘날’이라는 체언을 세 번이나 썼기 때문이어서는 적어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내야 ‘가치 있는 행동을 한 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좀 뜬금없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던 것이다.
맘에 쏙 드는 원고에 마침표를 찍은 날? 회사의 핵심 프로젝트 작업에 참여해서 큰 진척을 이룬 날? 오랫동안 서먹하게 지내온 친구하고 소주 한잔 나누면서 유쾌하게 화해한 날? 영어 단어와 숙어를 100개 이상 새로 외운 날? 적어도 책 한 권은 몰두해서 읽은 날? 여덟 시간 넘게 편의점 알바를 해서 학과 MT 경비를 스스로 마련한 날? 하다못해 단풍구경이라도 가서 맘에 쏙 드는 셀카를 스무 장 넘게 찍은 날?
이런 일을 해야만 가치 있는 날인가? 어떤 행동의 ‘가치’는 또 누가 정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는 인생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가치 있는 행동’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 하루종일 삼시세끼 밥이나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TV 리모컨을 손에 쥐고 소파에서 뒹굴었다면 그건 정말 가치 있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 날일까? 아무 의미 없이 허비해버린 ‘잃은 날’이라고 함부로 단정해도 되는 걸까?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어느 한가한 일상에 상상을 입히고 거기에 <일기> 라는 제목을 얹어 안도현 시인이 쓴 짧은 시다. 이게 ‘문인들이 뽑은 2011년 올해 최고의 시’에 선정되었단다. 그건 이 땅에서 글깨나 쓴다는 이들은 적어도 날아가는 기러기의 숫자나 헤아리면서 한가하게 보낸 하루도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다는 데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는 뜻이리라. 일기>
차창 밖으로 눈부시게 펼쳐진 단풍꽃을 바라보면서 좀 전에 읽은 명언의 ‘가치 있는 행동’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나는 그걸 이렇게 바꿔보았다.
국화꽃의 속눈썹을 다듬어주었든, 무당벌레의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주었든, 길고양이하고 오랫동안 눈을 맞추었든…, 예쁜 들꽃 이름 하나를 새로 알았든, 거칠어진 손마디를 매만지며 “제 어머니로 살아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든, 문어다리를 얇게 썰어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든, 아니면 언젠가 쑥스럽게 미소 지으며 “교수님이 쓰신 글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라고 말해주어서 이렇게나마 계속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고마운 그이와 늦가을 어느 날 저녁밥을 함께 먹었든…
‘살아가면서 무언가 처음 해본 일이 있는 날, 그날은 덤으로 얻은 날이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