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전주한옥마을 일원에서 성황리에 치러진 ‘제4회 1593 전주별시(別試)’ 재현행사 홍보물에는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글귀가 담겼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할 인재를 뽑기 위해 1593년 특별시험으로 치러진 전주별시에서는 문과 9명과 무과 1000여 명을 선발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친구인 사헌부 지평(持平)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서신에 담았다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글귀 속의 ‘호남’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치권에서 애용되는 단어다. 안타까운 것은 호남과 영남을 대비해 지역감정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했었다는 점이다.
호남(湖南)은 김제 벽골제의 남쪽이라는 설, 금강의 옛 이름인 호강(湖江)의 남쪽이라는 설, 고려때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딴 전라도 지방을 칭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전북과 광주·전남을 묶어 전라도와 호남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그러나 전북은 호남 속의 변방으로 차별받고 소외돼 왔다. 역대 정권에서 호남과 영남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책과 사업, 인사 정책 등에서 호남 몫은 광주·전남 몫이었다. 필요할 때는 호남이었지만 호남 안에서도 전북은 광주·전남의 견제대상이었다. 새만금사업과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을 반대한 세력이 광주·전남이었고 새만금 국제공항 역시 전남 무안공항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나주에서는 전북과 광주·전남 등 3개 시도의 초광역 협력 마한역사문화권 공동 발전 이행협약 및 대선 정책과제 공동 건의 서명식이 열렸다. 협약 내용에는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 건립, 마한역사문화촌, 마한역사테마파크, 마한역사길 조성, 마한 세계역사엑스포 발굴 및 육성 등이 담겨있다. 이 가운데 전북이 가져올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이 있을까, 과연 광주·전남이 전북에 양보할 사업이 있을까 궁금하다. 전북이 또다시 들러리를 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국적인 메가시티 열풍 속에 광주·전남은 광역경제권 구축 및 부울경과 연계한 남해안 남부권 메가시티로 방향을 잡았다. 영광~목포~여수~남해~거제~부산~울산을 잇는 해양관광도로, 수려한 섬을 연결하는 섬크루즈 등 남해안 남부권 광역관광벨트를 시작으로 남해안 광역경제권을 적극 육성해 남해안 남부권 메가시티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전북지역 정치권에서는 마한과 백제, 후백제로 이어지는 역사문화자원을 부여와 공주, 익산과 전주까지 확장하는 충청권과의 창의적인 메가시티 연계 전략를 제안하는 목소리도 있다. 광주·전남이 아닌 충청권과 협력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부터 탈호남 전북몫 찾기 운동이 수도권 향우들을 중심으로 시작돼 수십 년간 호남향우회에 속해 있던 재경 전북출신 출향인사들이 속속 전북도민회를 창립했다. 탈호남 전북 대전환은 이제 정치권의 몫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