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고향은 익산이다.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익산에서 버스를 타고 벚꽃길로 유명한 전군 도로를 지나 전주 동물원에 가끔 가곤 했다. 전주에 들어서자마자 한옥 기와로 만든 큰 문을 지나던 기억이 난다. 대문 가운데에 한문으로 뭐라고 써 있었는데 잘 모르지만어린 나에게는 뭔가 신비로워 보이고 이 문을 지나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지만 바로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라는 글자였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IC를 빠져나와 전주 시내로 들어가는 기린대로에 우뚝 서서 길목을 지키고 있는 호남제일문은 옛 전라감영이 있었던 전주의 관문이다. 호남제일문은 전주 입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건축물로 예술성에서도 의미가 있어 ‘전주 미래유산 19’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전통 한옥 지붕 호남제일문은 핫플레이스 전주 한옥마을과 잘 어우러져 전주의 이미지를 만든 대표적인 공공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 주겠지…달려라 고향열차…” 작곡가 임종수씨가 황등역을 거쳐 익산역으로 통학하다 철길 옆 코스모스를 보고 고향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노래로 지었다고 하는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의 가사 말이다. 몇 년 전 코레일 전북본부는 전라선과 호남선의 환승역 기능을 하는 익산역에서 매시간 안내방송과 함께 고향역 노래를 틀어 주었다. 익산시는 익산역-황등역 구간에 코스모스를 심는 등 노래 가사에 어울리는 옛 정취를 되살려 이를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익산역하면 고향역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게 되어 마치 자기 고향처럼 포근한 지역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
세계의 도시들은 저마다 연상되는 상징 조형물을 가지고 있다. 파리는 로맨스, 밀라노는 스타일, 뉴욕은 활기찬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시드니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3대 항구의 하나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베를린 지명의 기원인 곰(Berlin Bear), 싱가포르의 전설 속 동물인 머라이언 등은 그 도시의 전통문화나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소재에 기대어 고유한 상징을 지역 이미지화한 사례다. 세계인들에게 익숙한 아이러브뉴욕(I♥NY)도 황폐화해 가는 뉴욕의 도시 재생 캠페인의 슬로건으로 고안된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화돼 이제는 뉴욕의 상징 이미지가 된 사례이다.
서초구는 사람 중심 공공 디자인 혁신을 통해 도시의 품격을 높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늘막의 표준이 된 서리풀 원두막, 서리풀 이글루, 온돌꽃자리의자, 비대면 선별진료소 등이 서초구에서 창안한 공공 디자인이다.
이처럼 공공 디자인은 지역의 이미지를 구체적인 실체로 표현하는 것으로 그 대상이 매우 다양하고 포괄적이어서 건축, 조경, 공공시설, 교통시설을 비롯하여 공공용품이나 심볼 등 물리적·비물리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합적으로 어우러짐으로써 그 도시와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사람과의 만남에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듯이 지역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전북은 아름다운 자연 자원과 유서 깊은 전통문화 자원을 가지고 있다. 공공 디자인 혁신을 통해 전북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 시킴으로써 품격있고 차별화된 지역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면 전라북도의 첫인상 개선 효과뿐만 아니라 관광·문화 산업과 연계하여 전라북도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향상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최병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정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