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화백의 미술이야기] 이건 영어로 그린 게 아니구만 2

윌리엄터너 베니스의 대운하

그저 그런 적당한 교활함과 나태 또는 무능을 업보처럼 이어받은 이발사에게서 태어난 이 사내는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이 다른 아이보다 뒤쳐졌으나 그림은 곧잘 그렸고 13살 밖에 안 된 소년이 자기 아버지의 가계에 거친 솜씨의 스케치화를 전시하기도 했었다. 모든 것이 모자란 만큼 그림에는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왕립 아카데미에 목탄화 두 장을 제출하고 입학을 허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서든 별로 배운 것이 없이 다른 사람들을 기피하고 혼자서만 꼼지락 거렸다. 그가 이성에 대한 사랑을 느낄 나이에는 친구의 누이동생과 약혼까지 하였으나 이내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되고, 약혼자에게 보내는 편지의 대부분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약혼자 어머니의 손에서 증발되어 그녀는 그의 소식을 몰라 하다가 시나브로 사랑이 식어 나이 많은 남자와 다시 약혼을 했다. 결혼식 전날 밤, 말이나 글로는 전혀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는 그는 황급하게 돌아와 다시 사랑을 맹세했으나, 또 다시 명예를 훼손시킬 수 없는 처녀는 약간 아쉽지만 어쩌면 더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강행한다. 그 처녀의 결혼으로 상심하여 집에 돌아 온 그는 평생 혼자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림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26살에 이미 아카데미에서 전시를 가졌는데, 그 반응은 자신조차 어리둥절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의 비평을 보면 “터너라는 이름의 새로운 화가가 나타났다. 전에도 시원찮은 소묘를 전시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화, 풍경화를 내놓았다. 이 청년은 화가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내 친구 중에 보는 눈이 정확한 화가가 있는데 터너의 그림을 마술과 같다고 평했다. 모름지기 모든 화가들이 한 번쯤 가보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적혀있다.

그 후 1년도 안되어 그는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제부터는 거의 그의 독무대가 된 것이다. 폭풍 치는 바다를 보기 위해서 실제로 그런 위험한 상황에 배를 띄우고 선창에 자기를 묶게 하여 그 엄청난 위력을 체감하고 천둥 번개 치는 하늘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가 하면 그가 끝까지 사랑한 시골 길을 걸으며 그 자연의 온갖 형태와 색, 갖가지 분위기를 꼼꼼하게 노트에 적었다가 집에 와서 그림으로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