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혼’을 위하여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이혼은 결혼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 힘들다”, 이 표현은 필자가 이혼 문제 상담을 할 때 당사자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지인 교수님으로부터 ‘배우자와의 이혼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스트레스가 높은 일’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출처를 찾아보았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토마스 홈즈와 리차드 라헤 박사가 개인의 스트레스 지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정신적 충격 점수를 부여하여 순위를 매긴 연구 내용이다. 배우자의 사망이 100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혼은 73점으로 2위, 결혼은 50점으로 7위였다.

미국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보면 이혼한 후에도 자녀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휴가를 가며 친구처럼 편한 사이로 지내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서 개방적인 미국인들은 이혼으로 인한 분노와 스트레스가 약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요즘 필자가 재판하고 있는 이혼 사건의 당사자 중 한 분이 50대 중반의 남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 입사한 이후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거의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일한 결과 조기퇴직도 당하지 않고 부장직함을 달고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남편이다.

남편은 직장일만 우선시하고 가족과 가정일은 등한시해 오다가 남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50대 갱년기 아내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한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혼은 할 수 없다고 하였고, 또 아내가 변호사를 통해 작성한 10여 쪽 분량의 이혼 소장 내용 대부분이 거짓이고 오해를 하고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한 20여 쪽 분량의 서면을 준비해왔다. 남편에 대한 실망, 슬픔, 분노의 말들이 가득 담긴 아내의 소장에 대한 반박을 준비하면서 남편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

이혼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싸움을 한다. 때문에 필자는 서로에게 분노하며 비방하는 적대적인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아름다운 이혼의 조력자가 되기 위해 당사자의 말은 듣기만 하고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서면에는 최대한 간략하게 유화적으로 표현한다.(지난 20여 년 간 수많은 이혼 사건의 대리인 변호사, 서울가정법원의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혼 사유에 대한 다툼 대부분은 상처만 될 뿐 이혼 결과를 얻는 데는 영향이 없다는 경험적 산물이다)

앞서 말한 남편의 이혼 사건에서도 필자는 아내의 장점을 언급하고, 아내가 오해를 하고 있는 점에 대한 해명을 주 내용으로 한 6쪽짜리 답변서를 준비하여 법원에 조정의사를 피력하였고, 법원은 부부에 대한 가정법원 내부 조사절차를 거친 뒤 외부기관 등에서 부부상담을 받을 것을 명한 상태다.

필자가 보기에 남편은 아내 입장에서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한 번쯤은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필자는 이들 부부가 상담을 받으면서 아내가 남편의 과거 행태를 용서하고 이혼의사를 철회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끝내 이혼을 할 수밖에 없다면….

필자는 아내와 남편이 이혼 이후에도 미국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처럼 자녀와 함께 만나서 식사하고 여행을 갈 수 있는 아름다운 이혼을 한 부부가 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소임을 다할 것이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