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연말, 경인선 철로가 가까운 인천 동구 만석동에 눈길을 끄는 3층짜리 회색 건물이 들어섰다. 만석동은 인천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 일제 강점기, 간척사업으로 매립된 땅에 공장이 들어서자 모여든 노동자들과 6.25 전쟁으로 피난민들이 들어와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네다. 그 뒤 가난한 사람들이 들고나면서 인천의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이 됐다. 이 동네에 들어선 건물의 주인은 동네 아이들. 면적이라야 연건평 148㎡(45평)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양한 공간을 갖춘 이곳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부모들의 손길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함께 놀고 공부했다. 이름을 널리 알린 <기찻길 옆 공부방> 이다. 기찻길>
공부방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이일훈씨(1954~2021)였다. 그는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을 줄곧 모색해온 건축가였다. 상업적 건축 대신 생태와 공동체 정신을 지향하며 사회적 현실에 뿌리 내린 건축물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아온 그는 ‘작고 불편한 건축, 나누고 늘려 사는 건축’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자는 ‘채나눔’ 정신을 자신의 건축물을 통해 실현했다. <기찻길 옆 공부방> 도 그 결실이었다. 기찻길>
건축가가 이루고자 했던 공동체 문화의 정신은 공부방을 운영하는데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아동문학가 김중미씨가 펴낸 창작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 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 결정판이다. ‘괭이부리말’은 만석동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동화는 가난에 찌들려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마을사람들의 이야기. 지금도 초등학교 아이들의 필독서로 자리를 지키는 스테디셀러다. 1980년대 후반 이 마을에 들어온 작가는 <기찻길 옆 작은 학교> 란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을 동화로 엮어냈다. 기찻길> 괭이부리말>
5-6년 전 괭이부리마을이 전국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주민들의 절반가량이 쪽방 주민인 이곳 달동네를 관광자원으로 만들겠다는 인천 동구청의 계획이 알려지면서다. 어려웠던 시절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이 황당한 정책은 다행히(?) 실현되지 않았다.
오늘의 괭이부리마을은 인천의 명소가 됐다.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변했지만 새롭게 들어섰거나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과 집들 사이에는 오래된 골목길이 놓여 있고, <기찻길 옆 작은 학교> 또한 아직 건재하다. 대부분의 구도심 개발 사업이 그렇듯 이 마을에도 정비사업이 진행되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허물고 새로 짓는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공동체 문화와 정신을 앞세워 지킨 덕분이다. 기찻길>
도시마다 재생을 앞세운 풍경이 넘쳐난다. 돌아보면 도시의 힘이 될 수 있는 기억의 공간은 아직 많다.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