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법 위반 혐의’ 옥살이한 어부, 52년 만에 ‘무죄’

전주지법 군산지원, 임도수·양재천 씨 반공법 재심서 ‘무죄’ 선고
재판부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

15일 오전 전주지법 군산지원 앞에서 52년 만에 반공법 무죄 판결을 받은 어부들의 유족이 꽃다발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

북한 찬양 행위를 인지하고도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에 강제로 연행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어부들이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반공법(현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오명을 쓴 어부들은 두 눈을 감고서야 족쇄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단독 노유경 부장판사는 15일 임도수(1936년생·사망) 씨와 양재천(1916년생·사망) 씨의 반공법상 불고지죄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임 씨 등은 1966년과 1968년, 동료 선원의 북한 찬양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즉시 수사기관에 고지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돼 1969년에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4개월간 옥살이를 하는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들로부터 불법 감금, 가혹행위도 당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지만 피고인들의 가족이 재심을 신청했고 전주지법 군산지원이 지난 9월 재심을 결정했다. 하지만 양 씨는 1973년 12월, 임씨는 지난해 9월에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노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이 체포될 당시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구속영장 집행이 이뤄졌다거나 긴급 구속의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어떠한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며 “이 사건의 공동 피고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고문, 가혹행위가 이뤄진 정황도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공법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해악을 끼칠 위험이 있을 때 처벌한다”며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이러한 위험을 발생시켰다고 볼만한 행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인정됐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노 판사는 말미에 “판결문에 적시했듯 국가가 국민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범했다”며 “재심의 결과로 고인이 된 피고인들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됐길 바란다. 많이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위로했다.

판결 이후 유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임 씨 자녀는 “이 사건 다른 피고인들의 유족, 외부단체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신청했다”며 “무죄가 내려지는 순간 아버지 생각나서 울컥했다”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