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구조물에 의해 야생생물들이 곳곳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편익을 앞세운 인간의 이기심 앞에 야생동물들이 속절없이 죽음으로 내몰리면서다. 도로에서 발생하는 로드킬부터 도심의 건축 유리창과 투명 방음벽에 희생되는 야생조류, 농수로에 갇혀 폐사하는 야생동물 등 늘어나는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생물의 희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실제 본보 취재 결과 김제시 백구면의 한 농수로는 높이 2m가 넘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성인 남성도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란다. 야생동물이 탈출 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어 농수로에 빠진 고라니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폐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전언이다. 이곳뿐 아니라 도내 농수로에 설치된 야생동물 탈출로는 단 1곳도 없다. 전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 따르면 도내 콘크리트 농수로에 추락해 갇힌 야생동물을 구조한 것만 연 평균 100여건에 달한다. 야생동물이 농수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계단이나 경사진 탈출로를 만들어 야생동물 폐사를 막아야 할 것이다.
야생 조류가 도심에서 건축물 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을 보지 못해 충돌하면서 부상·폐사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환경부가 근래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피해를 조사한 결과, 국내에서 연간 800만 마리가 투명 방음벽 등에 부딪쳐 생명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음벽 충돌저감 테이프’만 부착하더라도 투명한 벽을 마주했을 때보다 장애물을 더욱 잘 인식하도록 야생조류를 도와 충돌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시민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야생조류를 좀 더 보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장 흔히 목격할 수 있는 로드킬도 여전히 심각하다. 동물 찻길 사고 방지를 위해 야생동물의 진입을 막고 생태통로 유도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로드킬 사고를 막는데 역부족이다. 특히 국도변의 경우 야생동물 출현지역이라는 주의 표시가 고작인 채 최소한의 방어 장치가 없는 곳이 허다하다. 도로에서 야생동물 출현과 로드킬은 운전자들의 안전을 직접 위협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야생동물 보호가 헛구호가 되지 않도록 촘촘한 대책과 함께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