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오는 밤이면 슬그머니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남편이 깰까봐 불도 켜지 않고 볼륨은 낮추고 어릴 적 아버지 몰래 이불 속에서 만화책을 읽듯이 말이다. 컴퓨터에서 흐르는 트롯에 발을 맞추고 흥얼거리면서 추억의 영화 한 장면처럼 해변을 거닌다. 미국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본 지가 50년 전이었을까? 여학교 때 단체로 관람했던 영화였다. 오래되어 내용은 떠오르지 않고 검푸른 바다 쏟아지던 태양 은빛모래의 해변에서 조니와 몰리가 입을 맞추던 광경만 떠오른다. 2시간 넘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조니와 몰리의 입 맞추는 횟수만 세었던, 영화를 관람하고도 서로의 의견이 달랐다. 난 91번이라고 했고 담임선생님은 76번 키스를 했다고 하셨다. 지금 다시 그 영화를 보게 된다면 주제곡 선율을 음미하면서 조리와 몰리의 입맞춤을 정확하게 셀 수 있을 것인데라고 생각을 해 본다.
요즈음에는 유학을 가면 외국인과 인연이 되어 국제결혼을 하고, 우리 동네에서도 외국인들이 살고 있기에 외국인을 만나도 별 느낌이 와 닿지 않지만 그때는 쌍커풀진 푸른 눈동자에 금발머리 조니와 몰리가 무척 부러웠었다. 10대의 사랑을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재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양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잔잔히 음악이 흐르고 청춘남녀가 껴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우리의 영화, 음악이 세계화 되어 우리 영화를 지구촌 어디서든지 관람할 수 있고 음악은 화려하게 퍼져 외국인들도 우리말로 부르는 노래를 흔히 볼 수 있다.
잊혀진 영화의 장면을 기억하려고 인터넷으로 내용을 알아보았다. 바트와 실비아의 아들 조니 그리고 켄과 헬렌의 딸 몰리, 몰리의 아버지 켄은 과거에 안전구조요원으로 일하며 내세울 것 없던 청년이었다. 그래서 첫사랑 실비아를 붙잡지 못하고 떠났다. 악착같이 노력하여 백만장자가 되어 살면서도 첫사랑 실비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20년 만에 안전구조요원으로 일했던 파인섬으로 여름휴가를 즐기려고 돌아온다. 다시 만나게 된 켄과 실비아는 아직도 사랑하고 헤어질 수 없음을 확인한다. 이혼을 하고 켄과 실비아는 결혼을 한다. 실비아의 아들 조니와 켄의 딸 몰리는 이 곳에서 만난다. 처음 만나자마자 사랑을 하게 되지만 조니의 아버지 바트, 몰리의 어머니 헬렌이 반대를 한다. 양가 부모님의 반대에도 둘이는 서로 관계를 이어가고 모리가 아이를 갖게 된다. 변호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켄과 실비아 덕분에 조니와 몰리는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켄과 실비아는 두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이겨 내자고 한다. 안식을 찾은 두 사람, 조니와 몰리가 키스를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인터넷에 기록된 내용 읽으니 어렴풋이 줄거리가 떠오를까 말까 영화가 끝나면서도 조니와 몰리가 서서 서로 껴안고 키스하면서 끝났던 게 기억된다.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란 영화를 관람했을 때 미국에 가고 싶었다. 태평양의 검푸른 바다, 쏟아지던 태양, 은빛해변을 동경했다. 그들의 자유분망한 낭만이 지금은 부럽지 않다. 우리의 영화예술이 셰계 각지에서 빅히트를 기록한다고 하니 자랑스럽다. 금발머리와 쌍커플진 푸른 눈동자보다 반달 눈썹의 얍실하고 쌍커플 없는 우리의 얼굴이 미인이란다.
A summer place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란 아득히 멀어진 영화주제곡이 내 안의 꿈이 되어 흥겨운 리듬을 타고 날아오른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빠져 보는 매력이지 싶다.
황복숙은 성심여고 시절부터 꾸준히 수필을 써왔으며 온글문학 회원이다. 현재 안골수필반 총무를 맡고 있으며 수필가의 꿈을 안고 습작 중이다. /황복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