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재 객원논설위원
‘조직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요, 적군을 쳐부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전군위상 파군차지’(全軍爲上 跛軍次之). 합리적 군사전략가인 손자는 싸움을 할 때 내 조직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조직원들이 싸움을 앞두고 분열하고 갈등하면 이길 수도 없거니와 이긴다 한들 그 승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선 경쟁이 치열하다. 정책경쟁과 함께 조직 정비도 놓칠 수 없다. 민주당이 연초부터 17일까지 복당 신청을 받고 있고, 국민의힘도 신청자를 일괄 복당시키기로 했다. 국힘당은 해당 행위가 심한 정치인의 복당을 불허했지만 윤석열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대사면’ 으로 돌아섰다.
손자병법처럼 먼저 내 조직을 온전히 구축한 뒤 적군을 깨부수겠다는 전략이겠다. 한 표가 아쉬운 마당에 이것저것 따지다간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 흩어진 진영을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건 합당해 보인다.
그런데 전북의 민주당 기류가 묘하다. 옛 국민의당, 민평당, 민생당 출신 정치인들이 민주당에 대거 복당하고 있지만 환영하는 기류가 아니다. 민주당 전북도당이나 지역당협위가 뭔가 한마디 포용 성명이라도 낼 법 하지만 냉랭하다. 오히려 뜨악해 하는 분위기다. 전화 한 통 없고 마주쳐도 반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혈전을 벌인 구원, 향후 경쟁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재명 후보가 내건 대화합 명분은 진정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한때 민주당에 몸 담았거나 민주당 정강·정책에 동의하는 분들은 제한 없이 다 합류하자는 취지”가 무색하다. ‘탈당자는 선거 공천 시 25% 감점’ 페널티를 ‘대선 기여도에 따라 감면’으로 바꾼 민주당 최고위 방침도 이재명 후보가 주도한 것이다.
정치공학적 봉합은 대선까지는 그럭저럭 굴러갈 테지만 6월1일 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는 파열음이 나타날 게 뻔하다. 대선이 채 두달도 남지 않았지만 지역 정치권의 관심은 벌써 지방선거에 꽂혀 있다.
싸움에선 흔히 말하는 기세라는 게 있다. ‘구지어세’(求之於勢)가 그런 표현이다. 세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병사들이 엄청난 속도로 굴러가 적을 깨부수는 힘센 돌이 될 수도 있고,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 서 있는 돌덩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기세는 리더가 만든다. 지역정치에선 도당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이 리더인데 조직의 에너지를 극대화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박힌 돌, 굴러온 돌이 화합해 힘센 돌로 기능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서 있는 돌덩이로 남게 할 것인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다른 하나는 전북의 정치지형이 일당 독주로 회귀할 개연성이다. 전북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쟁 무풍지대라는 점이다. 학교 앞 분식점이 한 곳일 때와 서너개일 때의 서비스는 크게 달라진다. 고객의 선택권도 다양해진다. 정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쟁이 없는 구조는 고인 물이나 다름 없다. 부패하기 십상이다.
민주당은 일당 독주의 폐해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 비리와 성추문, 관광성 해외연수, 부동산 투기와 농지법 위반, 리베이트성 주민숙원사업비, 막말 등 갑질 행위 등이 제기돼도 책임을 묻고 반성하기 보다는 제식구 감싸기가 먼저였다. 정당 간 경쟁이 치열한 구조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의 덩치가 커지고 지역이 일당 독주구조로 재편된 것은 정치서비스와 도민이익, 전북발전 측면에선 불행이다. 하지만 당내 경쟁은 더 격화할 것이다. 당내 경쟁이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 갈아엎는 개혁과 쇄신으로 이어져 자양분을 공급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도로민주당이 되고 만다. 그리고 도민들은 다음 선거 때 또 회초리를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