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태건 시인 - 진창윤 '달 칼라 현상소'

20년간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사내가 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우체국에 갔다. 일간지 별로 응모하느라 우표 값도 꽤 들었다. 그때부터 휴대폰은 항상 충전해 두었고 옆 사람 벨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새해 아침이면 당선작들을 찾아봤다. 그리고 자신의 불운에 좌절했다. 낙선한 이유를 몰라서 화가 났고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슬펐다. 나이 쉰이 다 되어 사내는 대학원에 입학하기로 했다. 지도 교수였던 안도현 시인은 ‘연애를 하고 술을 많이 마셔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사내는 다시 좌절했다. 체질적으로 술이 약했고, 총각이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그림을 그린다. 알아주지 않아도 40년간 그렸다. 그림을 그리면 잡념이 없어졌다. 판화를 할 땐 조각 날이 지나간 자리마다 뿜어내는 나무향이 좋았다. 송곳을 찍어 별 모양을 만들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어 하늘에 별이 떴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를 ‘그림 천재’라고 불렀다. 그가 그렸다는 걸 안 믿을 정도였다. 틈만 나면 그렸다. 선반에 습작품이 가득 쌓였다. 어느 날 집에 오니 그림이 없어졌다. 아버지가 불쏘시개로 썼다고 했다. 사내는 다시 그렸고 아버지는 다시 태웠다. 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말했다. ‘이제 그림은 그만 하고 취직해라!’ 

사내는 얼마 전 첫 시집을 냈다. 제목은 <달 칼라 현상소>다. 시집을 내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다. 그에겐 87년 민주화의 투쟁의 향수가 남아 있다. “디지털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 코닥필름 회사 망한 지가 언제인데 / 아날로그 필름만을 고집하는 달 칼라 현상소 남자 / 자꾸만 얼굴을 바꾸는 달을 좇는다 ”(표제시 ‘달 칼라 현상소’) 달은 얼굴을 바꾸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내에게 달은 자유요, 민주주의다. 시인은 달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달의 존재를 믿는다. 

시인 진창윤은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데 돈에 대한 공포가 민중의 연대를 방해한다. 내일이 두려워 현재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면 자유를 누리게 될까? 효율성을 위해 자동차를 사고 가전 제품을 바꾼다. 노동시간은 추가되고 어느새 몸은 늙어 약해진다. 벌어둔 돈은 치료비로 나간다. 돈에 대한 공포가 각자도생을 만든다. 시인은 세상이 다 변해도 달이 이끄는 데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20세기 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말한다. 생계를 위한 ‘노동’과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예술가의 ‘작업’이 의미를 갖기 위해선 사회적, 정치적 ‘행위’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의 자유’가 권리이자 의무였다는 것. 시인은 노동이 주는 돈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위해 오전엔 독서를 하고 오후엔 돈 안 되는 그림을 그린다. 저녁이 되면 더 돈 안 되는 시를 쓴다. 사내의 삶은 예술 같고 그의 시집에는 생활이 담겨 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낭만주의자다. 

/박태건 시인

 

박태건 시인은

익산 출신으로 199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시와반시 신인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시집으로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가 있으며 지역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아서 <익산 문화예술의 정신>을 비롯한 10권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