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반대 투쟁 16년의 기록 '한자리에'

오는 4월 3일까지 서학동미술사진관서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16년, 마을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절단기를 들고 날뛰던 경찰도, 하늘을 시끄럽게 휘젓던 헬기도 떠나고 밤새 불을 깜빡이는 송전탑만 존재를 과시합니다. 많은 이들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더 이상 방패를 밀고 당기는 싸움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투쟁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학동사진관이 겨울 방학 끝에 '서학동사진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서학동사진미술관이 오는 4월 3일까지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투쟁 전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말없이 싸워도'를 연다.

반대 투쟁 17년째임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아직도 4개 면 경과지 여러 주민 세대는 합의하지 않은 채 일상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감을 따고, 깨를 털며 산산조각 난 마을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할매•할배'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돈 몇 푼 때문이 아니다. 경험으로 체득한 가치가 소중하고,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은 도움을 준 연대자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국가폭력에 대한 분노를 잊지 못하고, 앞으로 피해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상황의 모든 것을 담을 순 없지만 전쟁터 같았던 밀양•청도를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는 힘이 됐던 노래, 밥 등도 사진에 담았다. 각자 농사 지으며 삼삼오오 둘러 앉아 밥도 먹고, 하하호호 웃는 일상에 '송전탑'이 들어와 밀양•청도를 통째로 흔들어놓은 것이다.

처음에 이 전시는 개인전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후 이재각 작가의 제안에 따라 서학동사진미술관은 단체전으로 방향을 바꿨다. 전시에는 강유환, 노순택, 박승화, 이승훈, 이재각, 정택용, 조재무, 주용성, 한금선, 최형락 등 카메라를 들었던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크지 않은 전시장 안 벽면에 걸린 사진들은 큰 울림을 준다. 다른 지역에 산다고 잊었던 송전탑 반대 투쟁을 마음속에 되새길 수 있는 기회다. 17년 동안 반대 투쟁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설명 없이 사진만 걸려 있음에도 조금이나마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이재각 작가는 "수천 장면의 사진과 영상이 존재한다. 미처 담을 수 없었던 상황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생각하면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는 더 많을 것이다"라며 "우리가 곁에 없었더라도 늘 함께 밥을 나누고 노래 불렀을 사람들. 마을 주민 간의 심각한 갈등을 보여 주는 사진은 수천의 장면 속에서도 찾지 못했다. 도대체 이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할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