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천재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잘 알았다’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불태워 주위를 밝히는 겸손한 천재가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천재성을 돋보이기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방약무도한 생각을 했다.
여기에 미인이 한 명 있다 하자. 그 미인이 자신이 미인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집착했다면 그 미인은 권모술수에 의한 흥정의 대상은 될지언정 순수하게 사랑받을 권리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천재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천재임을 자각하고 천재를 이용하는 이면의 추악성으로 인하여 존경스럽게 혹은 친근하게 보여지기보다는 괴물로 보이는 것이리라. 예술가는 어쩌면 정상적인 사고를 기피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더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는 기형적인 사고를 요구받게 되고, 그래야 비로소 그쯤에서 적당한 찬사를 보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직접 살아보기 힘든, 가보기 힘든 적선지대를 예술가라는 일단의 사람들을 보내 약간의 특권의식으로 넘나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대리 만족하며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켈란제로의 편협된 외고집이나 고갱의 방랑성, 고호의 정신적 황폐, 루오의 환희를 위한 우울, 피카소의 극단적 이기성에 의한 이중인격의 생활등을 노출시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리라.
이제 피카소의 여인들을 이야기하자. 페르낭도 올리비에, 에바, 올가, 마리 테레즈, 도라 마르, 프랑스와즈 질로, 쟈크린 록크----. 여인이 바뀌어서 그림이 바뀌었는지 그림이 바뀌어서 여인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를 스쳐간 여인들 중에 그래도 중요한 배역을 담당했던 여인들은 그의 그림의 변화와 연관 관계가 있다.
그의 나이 23살에 만난 페르낭도 올리비에는 그에게 있어서 청색시대로 대표되며, 32살에 인연을 맺게 된 4살 연하의 에바는 입체주의, 36살에 만난 10살 연하의 러시아 귀족 올가 코홀로바는 고전주의, 46살에 만난 18살의 마리 테레즈는 초현실주의, 56살에 만나게 되는 도라 마르는 게르니카, 63살에 만난 38살 연하의 프랑스와즈 질로는 평화스러운 목가시대, 80살에 만난 쟈클린 로크는 만년시대로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