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통속어(通俗語) 가운데 ‘말짱 도로묵’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은 “아무 소득이 없는 헛된 일이나 헛수고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말짱’은 ‘속속들이’, ‘모두’라는 뜻을 가진 부사로서 ‘도로묵’을 수식하고 있으므로 ‘도로묵’이 ‘헛된 일, 헛수고’라는 뜻을 가진 말임을 알 수 있다.
‘도로묵’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 선조임금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묵어’라는 볼품없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피난길에 허기졌던 선조가 맛있게 먹은 후, 격을 높여 ‘은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옛 생각이 난 선조가 은어를 다시 먹었는데 맛이 전과 같지 않자, “도로 ‘묵어’라고 하라”고 한 것이 오늘 날 ‘도로묵’ 혹은 ‘도루묵’으로 굳어져 ‘말짱’이라는 부사와 결합하여 ‘완전히 헛된 일이나 헛수고’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일 뿐 근거가 될 만한 문헌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도로무공’이라는 말이 와전되어 ‘도로묵’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도로무공’을 빨리 읽다보면 ‘도로묵’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무공’은 한자로 ‘徒勞無功’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한갓(헛될) 도’, ‘수고로울 로’, ‘없을 무’, ‘공 공’이라고 훈독한다. “헛되이 수고했을 뿐 아무런 공적이 없다”라는 뜻이다. 중국 남송시대 성리학자인 주희(朱熹)가 『시경』의 「보전(甫田)」시에 주석을 붙이면서 “작은 일을 싫어하면서 큰일에 힘쓰고, 가까운 것을 홀시하면서 먼 것을 꾀하면 헛되이 수고할 뿐 공이 없다.(厭小而務大, 忽近而圖遠, 將徒勞而無功也.)”라고 한 말에서 비롯된 4자 성어이다. 발밑에 놓인 현실적인 일은 하지 않고 원대한 꿈만 꾼다면 매사가 헛수고라는 뜻이다.
‘도로묵’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통속어로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도 있다. ‘나무아미타불’은 “완전히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한다.”라는 다짐의 주문이다. 불교에 처음 입문하면서 외우기 시작하여 평생 외우는 주문이다. ‘도로 아미타불’은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외운 ‘나무아미타불’의 공덕이 전혀 없이 헛수고가 되었다는 뜻이다. 파계한 스님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개인이든 국가든 매사를 잘 가꿔나가야 공이 쌓인다. 성실한 노력이 없이 원대한 꿈만 꾸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도로무공이고, 한 순간의 실수로 오랜 동안 쌓아온 공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은 허망한 도로무공이다. 전자든 후자든 도로무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왠지 불안하다. 애써 쌓아올린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공든 탑이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가치관과 판단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꼴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불안한 것이다. 4.19의 숭고한 정신이 5.16쿠데타로 퇴색해버렸고, ‘1980년의 봄’이 신군부의 등장으로 다시 싸늘해졌으며, ‘지못미’의 통곡을 낳은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와 탄핵을 맞은 박근혜 정부의 불행을 보면서 우리는 ‘도로묵’, ‘도로무공’의 허탈감과 배신감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다. 다시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도로묵’이나 ‘도로무공’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의 감시가 필요하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