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양심수와 시국 사범을 변호하며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렸던 한승헌 변호사.
고인은 1934년 진안에서 태어났으며, 전주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60년 검사로 임관해 통영지청·법무부 검찰국·서울지검 등에서 근무했으며, 196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고인은 변호사 시절 ‘분지 필화사건’(1965)을 시작으로 인권변호 활동에 뛰어들었다. 동백림 사건(1967), 통일혁명당 사건(1968), 민청학련 사건(1974), 인혁당 사건(1975),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1980),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2004)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도맡았다.
1975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규남 의원(1929~1972)의 죽음을 애도하는 ‘어떤 조사(弔辭)’를 기고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재심 끝에 2017년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고인은 또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으며, 1986년 홍성우·조영래 변호사 등과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다. 정법회는 1988년 설립된 민변의 전신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는 감사원장(1998~1999년)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땐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리인단에 소속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에는 선거 캠프 통합정부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밖에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과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관훈클럽 고문변호사 등도 역임했다.
고인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하고 사법개혁과 사법부의 탈권위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고인은 전북일보와도 인연이 깊었다.
전주고 재학시절 고인은 전북일보 신문배달을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새벽에 신문배달을 한 뒤 등교해 공부에 몰두하는 등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이어갔다. 이 같은 인연으로 고인은 취업한 이후에도 도민들을 위한 글 등을 전북일보에 게재하는 등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또 2016년에는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에 강사로 나서 ‘CEO와 스피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특히 스피치 속에 담긴 유머를 소개하며 주제에 걸맞은 위트 있는 강의로 원우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와 함께 고인은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북대 학보사 기자 시절부터 지면에 시를 수록한 고인은 검사로 일하던 1961년 첫 시집 <인간귀향>을 냈고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활동을 하던 1967년 두 번째 시집 <노숙>을 냈다. 이어 2016년에는 세 번째 시집 <하얀 목소리>를 발표했다.
변호사로 일하던 2009년 고인은 자신이 맡았던 시국사건들을 술회한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을, 2013년에는 에세이 모음집 <피고인이 된 변호사>를, 2019년에는 그동안 교감을 나눈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분을 생각한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