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원짜리 고추밭에
이만 원짜리 약을 뿌린다
긴 장마에 가슴 바닥까지 젖어버린
늙은 어머니의 시름처럼 번져가는
역병 탄저병
쏟아부은 정성이야
저렇게 체념 속에서 뭉개졌다지만
씨앗 비료 농약값
아무리 계산해도 맞지 않는 셈을 하며
악마의 색으로 분사되는 하얀 농약에
엉켜버린 머리를 감는다
암만 생각해도 그들의 잘못인 양 싶어
잘난 얼굴들 박힌 신문을 찢어
병든 가지마다 만국기처럼 걸어놓고
그들만의 합리 위에
진한 살충제를 뿌린다
△농사는 생명을 길러내는 일이어서 세상의 모든 농부는 신의 마음으로 생명을 가꾼다. ‘오천 원짜리 고추밭에/이만 원짜리 약을 뿌’리는 일이 생명에 대한 외경 없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씨앗 비료 농약값’을 계산하면 몇 번이고 밑지는 일은 이제 그렇다 치고 ‘쏟아부은 정성’까지 ‘뭉개지는’ 작황이 ‘암만 생각해도’ 위정자 내지는 지도자의 잘못인 것만 같다. ‘그들만의 합리’가 휘날리는 고추밭에 ‘진한 살충제’를 뿌려본들 작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선한 논리라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이치는 농사도 예외가 없다. /김제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