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청와대 닫힌 국민청원

일러스트/정윤성

이명박 정부 시절 2년 가까이 청와대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청와대 경내에 들어간 날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청와대 취재 시스템이 출입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에서의 브리핑과 대통령의 공식 일정과 행사를 취재하는 풀 기자(공동기자) 운영 방식이어서 청와대 경내에 드나들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도 개인적으로 비서실동에 들어갈 경우 만날 사람과 시간 등을 미리 약속하고 보안 검색을 거친 뒤 출입이 가능했다. 그래서 대부분 청와대 밖에서 점심과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어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을 만나거나 전화로 취재하는 경우가 일상이었다. 이처럼 청와대는 출입기자에게 까지 닫힌 공간이었다.

철저한 통제 속에 운영되던 청와대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지난 10일 국민들에게 완전 개방됐다. 지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 만이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6차례에 걸쳐 6500명씩 매일 3만9000명이 청와대를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오는 21일까지 청와대를 관람할 수 있는 신청자 접수에 231만2740명이 몰려 관람 및 신청 기간이 연장됐을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 문이 열린 날 국민들의 소통 창구였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문을 닫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100일째인 2017년 8월 19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개설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문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며 4년 8개월여 만인 지난 9일 낮 12시 운영이 종료됐다.

청원글이 30일 안에 20만명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 또는 정부 부처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개설 이후 올해 2월까지 총 5억1600만명이 방문했다. 누적 게시글 111만건 가운데 293건이 2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어 정부의 답변을 이끌어냈다.

지난 2020년 4월 17일 게재된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에 271만5626명이 동의하는 등 ‘텔레그램 n번방 사건’관련 청원에 총 769만명이 지지를 보내면서 성폭력 처벌법 개정을 이끌어 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음주 운전자 처벌 강화(윤창호법),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도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시작됐다.

국민청원 게시판은 일부 거짓 청원, 비방 청원으로 민원 해결의 장이 아닌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국민 소통의 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윤석열 정부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 행정안전부의 광화문 1번가 등 각각 운영되던 국민 민원 플랫폼을 하나로 통폐합하고 보완해 새롭게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열린 청와대 처럼 국민들의 관심을 끌 새로운 국민 소통 창구의 멋진 등장을 기대한다.

강인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