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전 세계 비보이들이 선망하는 ‘독일 인터내셔널 배틀 오브 더 이어’의 우승팀은 한국의 비보이 그룹 ‘라스트포원’이었다. 그 덕분에 한국은 독일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세계적으로 실력 있는 비보이들이 활동하는 나라로 꼽힐 수 있게 됐다.
같은 해, 특별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졌다. 라스트포원의 성장과 세계 대회 도전기를 담은 ‘플래닛 비보이’다. 이 영화는 라스트포원의 이름을 세계에 더 널리 알렸다.
라스트포원은 전주 출신의 십대 비보이들이 결성한 그룹이다. 2002년 거리로 나온 직후부터 각종 대회를 휩쓸면서 주목을 받았던 이들은 길지 않은 시간에 비보이들의 우상이 됐다.
‘배틀(Battle)’은 각 그룹과 개인의 기량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비보잉만의 독특한 형식이다. 수많은 비보이 대회의 꽃이 ‘배틀’에 있는 이유다. 라스트포원은 팀원들의 결속력도 단단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서로 다른 색채와 기량이 빼어나 ‘배틀’에 특히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라스트포원의 힘은 또 있다. 다른 예술과 소통하는 탁월한 감각과 감성이다. 국정홍보 동영상 <다이내믹 코리아>의 대표모델이 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라스트포원은 가야금과 비보잉을 접목한 <캐논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클로스 오버 공연을 통해 비보이 문화 대중화에 앞장섰다. 극장형 댄스 뮤지컬 <스핀 오디세이>는 뉴욕타임스의 극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 고난의 시간은 길었다. 2009년에는 전속기획사가 파산하면서 참담해진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멤버들은 여러 해 동안 아르바이트로 서로를 의지하며 버텼다. 몇몇 멤버는 떠났고, 그 자리를 새 멤버가 채웠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라스트포원을 특별히 사랑했다. 그가 전주를 방문했을 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그는 2008년 한국에 부임하기 직전, 영화 <플래닛 비보이>로 라스트포원을 알게 됐다. 마침 주한대사가 되어 한국에 왔을 때 ‘세계적인 브레이크 댄스에 새로운 창조성과 에너지를 불어넣은 한국 비보이의 역할과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들의 공연장을 찾아다닐 정도로 애정이 깊었던 그는 오래된 도시 전주의 힘을 알게 됐다. 라스트포원을 배출해낸 전주가 어떤 도시인지 관심을 갖게 된 덕분이었다.
라스트포원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멤버들의 지역적 연고는 깨졌지만, 전주는 라스트포원의 영원한 고향이다. 전주가 품고 있는 창조력을 발휘(?)해준 라스트포원의 존재가 새삼스럽다. 들여다보니 20년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안은 라스트포원의 건재가 자랑스럽다. 그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낸다./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