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초록비 - 박성숙

바람 일지 않게

스란치마 끄는 소리로

그러나 여물게 굴러떨어지는

 

잎새에 흘러

소년의 반짝이는 이

 

꽃잎에 앉아

소녀의 부끄러움

 

산천을 씻는 빗물 방울방울

산도 들도 초록 세상

 

한 마리 새로 날아서 올라

구름도 초록으로 물들이고 싶은

 

△‘스란치마’는 소란 단을 부착한 치마다. 전통 혼례 의상이지만 녹색당의와 스란치마를 입고 폐백을 올리는 건 신부의 꿈이었다. 대청마루를 지날 때 스쳐 지나가는 스란치마의 소리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마음이 초록일 때 마음을 적시는 빗방울도 초록으로 스민다. 초록은 순수한 자연의 무채색이다. 초록을 더 초록으로 물들이는 빗방울은 젊은 날의 기억으로, 초록 세상의 공간으로 간다. 꽃잎이 초록으로 스미는 곳, 젊은 꿈이 있었던 공간일터. /이소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