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보행자중심 교통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박경민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장

모든 국민의 노력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1991년도 1만 3429명에서 2021년도 2916명으로 많이 감소했다. 하지만 보행자 교통사고는 상대적으로 많이 줄지 않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SS)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총 1만 7312명이며, 이중 보행자가 6575명(약38%)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과거 큰 격차를 보였던 교통사고지표들은 OECD회원국 평균에 근접하게 됐지만 보행 중 사망자는 OECD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는 후진국형 교통사고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보행자에는 어린이나 노약자 등 교통약자가 상대적으로 많아 안타까움이 더한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보행자 교통사고가 줄지 않는 원인 중 하나는 유럽과 우리나라의 교통문화의 차이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유럽의 교통문화는 마차문화와 관련이 깊다. 유럽에서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차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고 그것이 자동차로 대체되면서 그때 형성된 교통문화가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대개 마차는 사람이 도로에 서있거나 걷고 있을 때 정지하거나 알아서 피한다. 보행자가 횡단할 때 자동차가 알아서 정지하는 것이 이 마차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우리의 교통문화는 가마문화라고 할 수 있다. 지체 높은 분이 가마를 타고 갈 때 가마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길을 터주고 피한다. 이 가마가 자동차로 대체되면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보행자가 오히려 멈추고 피하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는 교통문화로 형성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먼저 건너라고 차를 멈췄을 때 건너면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는 학생과 중년여성을 보면서 고마울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인데 라며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언제나 보행자에게 통행우선권이 부여되는데도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 자동차에게 통행우선권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보행자는 여전히 자동차가 없을 때 눈치 보면서 통행하고 있다. 

지난 7월12일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은 위 같은 보행자안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의무를 강화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도 일시정지 하도록 의무화한다. 또한 어린이보호구역내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의 경우에는 보행자의 횡단 여부와 관계없이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 해야 한다.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보행자는 도로의 전 부분으로 통행할 수 있고 운전자에게는 서행 또는 일시정지 등 보행자 보호의무가 부여된다. 

이제 교통사고 감소율이 정체기에 올 수가 있다. 그동안 해마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많이 감소시켰지만 보행자 사고를 감소시키지 않으면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교통사고 사망자를 지속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운전자나 차 중심의 문화가 아닌 보행자중심의 교통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행자중심의 교통문화가 단기간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안전띠 착용이 교통문화로 정착된 성공적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단속 등 강력한 법집행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보행자를 우선으로 배려하는 인식전환이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일 것이라 생각한다. 

차도란 차가 다니는 길일뿐 차가 주인인 길이 아니다. 사람이 차조심해야 하는 것보다 차가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운전자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이다. 내가 운전하는 차의 바로 앞에 내 부모님, 내 자녀, 내 가족이 길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박경민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