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친구'⋯마약 탄 커피 먹이고 내기골프 5500만 원 가로채

경찰, 사기 등 혐의 2명 구속·2명 불구속 송치
호구 물색, 꽁지, 바람잡이, 선수 등 역할 분담

A씨(52)는 10년지기 친구인 B씨(52)와 자주 골프를 쳤다. A씨는 B씨와 골프를 치면서 C씨(56)와 D씨(63)를 소개받았다. 2~3번 정도 이들과 함께 골프를 친 뒤 A씨는 지난 4월 8일 익산의 한 골프장에서 내기골프를 하기로 했다. ·

사건 당일 오전 8시께. 당초 함께 골프를 치기로 했던 D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D씨 대신 처음보는 E씨가 나왔다. A씨는 B씨에게 “처음보는 사람과 어떻게 내기골프를 치냐”고 거부했다. 하지만 B씨는 “(E씨가)보기플레이 정도 하는 사람이다. 니 실력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꼬득였다. 본격적인 내기를 하기 전 이들은 아침식사를 했다. A씨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퍼팅연습을 했다. B씨 등은 식사를 마친 후 아이스커피를 A씨에게 건냈다. A씨는 별 의심없이 커피를 마셨다. A씨가 마신 커피에 B씨 등은 로라제팜(신경안정제) 성분이 함유된 약품을 몰래 탔다. 이들이 구한 약품은 D씨가 정식으로 처방받은 것이었다.

약품이 함유된 커피를 마신 A씨는 몸이 이상해졌다. A씨는 “몸이 좋지 않아 골프를 그만 치겠다”고 했다. B씨는 “어렵게 모신 분들인데 니가 치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재차 A씨를 설득했다.

사건 당일 골프 스코어 카드.사진=전북경찰청 제공.

이렇게 내기 골프는 계속 이어졌다. 약 기운이 올라오자 A씨의 실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평균 80타의 실력을 가졌지만 이날은 100타가 넘었다. B씨 등은 A씨가 힘들다고 할 때 마다 미리 준비한 얼음물과 진통제까지 줘가며 골프를 이어갔다.

이날 한 타당 판돈은 30만 원이었으나 후반 홀에서는 한타 당 최대 200만 원까지 판돈이 올라갔다. A씨는 한 홀에서 최대 700만 원까지 잃었다. B씨 등이 이렇게 A씨를 상대로 뜯어낸 돈은 총 5500만 원. 당초 A씨는 골프장에 현금 3000만 원을 준비해 갔지만 골프를 치는 과정에서 돈을 모두 잃어 B씨에게 2500만 원을 빌린 것으로 파악됐다.

다음날 전날 마신 커피에 의문을 품고 경찰서로 향한 A씨의 소변에서는 로라제팜 성분이 검출됐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피해자와 당시 동행했던 캐디 등의 진술을 받아 B씨 등이 A씨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사기골프를 친 것으로 파악했다.

전북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등의 혐의로 B씨 등 2명을 구속하고, 범행에 가담한 2명은 불구속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조사에서 B씨 등은 “커피에 설탕을 넣은 것이지 마약을 넣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심남진 마약범죄수사대장은 “이들은 호구 물색, 꽁지, 바람잡이, 선수 등 역할을 분담하고서 피해자를 범행에 끌어들였다”면서 “범행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로라제팜 150정도 압수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