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우영우와 ESG의 E

안치용 ESG연구소장

얼마 전 평소 긴밀하게 지내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환경·사회·거버넌스를 뜻하는 영어 단어의 첫 글자를 딴 ESG에서 ‘E’에 해당하는 정확한 단어가 무엇이냐는 내용이었다.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엔 이견이 없는데, 환경을 두고는 ‘Environmental’과 ‘Environment’를 두고 어느 게 맞는 표기인지 갑론을박이 있다는 전언이었다.

인터넷의 백과사전에서는 물론 다른 많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도 비슷한 비율로 영어표기가 형용사와 명사로 엇갈렸다. 맞는 표기는 ‘Environment’이다. 원래 투자용어에서 유래한 ESG는 사회책임 관점에서 투자대상 기업을 고르는 기준이다. 사회책임투자(SRI)에서 투자대상 기업을 선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모두 명사이어야 한다. 그럼 ‘사회’는 ‘Social’보다 ‘Society’가 맞는 것 아닐까. 답은 간단하다. ‘Social’ 또한 명사이다. 투자대상 기업을 고르는 기준이 ‘사회’일 수는 없다. 기업이 사회와 관계를 맺는, 사회적인 양상을 살피며 투자적격 기업을 선별한다. ‘Social’은 기업경영의 사회적 측면을 뜻하는 내용상의 명사이다. 

환경ㆍ사회ㆍ거버넌스를 뜻하는 ESG로 쓰면 되니까 영어표기에 정색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반론이 예상된다. 형용사가 본질에서 주어를 설명하는 보어로 사용되거나 명사를 수식하는 용도로 활용되기에 언제든 명사에 치여 희미해질 수 있다는 걱정은 단지 기우일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다. 제작진이 극중에서 장애를 다루면서 세심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극의 구조상 이 드라마에서 장애의 소비가 불가피하다. 드라마에서 장애인으로 그려진 우영우는, 우영우를 뺀 현실의 거의 모든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에겐 별똥별이나 기러기처럼 비교를 불허하는 저 높은 곳의 존재이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재인 것이 흥행의 핵심 요소이다. 너무 압도적인 그 탁월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으로 장애가 사용됐다고 말한다면 세상을 너무 삐딱하게 보는 것인가. 

우영우는 현직 대통령 윤석열을 포함한 서울 법대로 통칭되는 엘리트 집단의 주변인이지,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의 대표가 아니다. 물론 우영우가 현실의 인물이라면,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여 대중예술로 재현한 것이 아닌 진짜 편견과 차별, 소외에 투쟁한 진짜 피와 살로 된 그 실제 인물이라면 그는 삶으로 장애를 공유하기에 장애는 장식이 아니다. 즉 장애는 수식어나 형용사가 아니라 주체이자 명사가 된다. 반면 서울 법대 수석 서울 의대 수석 등을 내세워 엘리트 집단의 정점과 그 집단 내 주변부 사이의 대비를 극대화한 상업주의 드라마에서는 장애인이 사라지고 특출한 변호사 ‘불구하고’만 남는다. 

자폐스펙트럼이란 형용사가 탁월한 변호사를 수식하고 증발했다는 견해는 ESG에 더 주효하게 적용된다. ESG의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E이다. 일각에서 E를 형용사로 만들어 ESG의 뒷전에 두려 한다는 우려가 전해진다. ESG의 모든 현장에서 E가 ESG의 맨 앞에 자리한 확고한 명사임이 기억돼야 한다는 생각이 우영우를 보며 들었다. ESG는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ESG가 아니다. E가 형용사이어서도 안 된다. 영어표기가 생각보다 중요한 사안 같기도 하다. 

/안치용 ESG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