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유산’은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이어져 내려오는 시설과 기술, 업소나 생활 모습, 이야기 등의 유무형 자산’을 이른다.
‘생활유산’ 개념이 도시정책에 도입된 것은 2015년 서울시가 발표한 ‘역사도심 기본계획’에서다. 당시 서울시는 법제화된 제도로 만들어 의무화하지는 않았지만, 도시의 기본계획에 이들 유형의 생활유산을 최대한 보존하고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문화재법에 따라 보호받는 문화재나 사적, 건축 전문가들이 보존 가치를 인정하는 근대문화유산 외에 ‘생활유산’이란 별도의 기준을 만들어 보존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덕분에 적지 않은 생활유산이 지켜질 수 있게 되었다.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처했으나 살아남게 된 서울의 오래된 가게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3년 전쯤 논란 끝에 철거 위기에서 벗어난 서울의 냉면집 ‘을지면옥’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을지면옥은 지난 6월 25일 결국 문을 닫았다. 재개발 시행사와의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법원이 시행사의 손을 들어준 결과다. 이 과정에서 을지면옥과 시행사는 모두 분쟁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제 을지면옥 외에도 서울의 오래된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았거나 문을 닫을 상황에 처했다. 서울시가 보존해야 할 생활유산으로 지정한 49개 가게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법적 분쟁도 그렇지만 서울시가 역사도심기본계획의 ‘생활유산’ 관련 기준을 현실에 맞게(?) 재정비할 계획이라니 서울의 ‘생활유산’은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생활유산은 서울 같은 대도시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이 닿아 있는 생활유산은 오래된 도시일수록 더 풍요롭고 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발이 보존의 가치를 앞지르던 시대를 거치면서 모든 도시는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생활유산을 잃었다. 서울시의 사례가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생활유산은 일정한 시대만의 산물도 아니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가치 있는 흔적, 곧 한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규정하는 그릇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낙후된 구도심의 재개발이 불가피해지지만 이런 환경일수록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정책적 지원이 꼭 필요한 이유다.
때마침 흥미로운 전시가 있다. 전주 선미촌의 <뜻밖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2 도시가 사랑하는 우리 가게’ 전이다. 전시의 주인공은 화가들이 그려낸 전주 구도심의 서른 개 ‘우리 가게’들이다. 들여다보니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내는 오래된 가게와 새롭게 문을 연 가게들 사이에 도시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화가들이 건네는 도시의 이야기, 그 소중한 기록이 반갑다.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