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 최희순 할머니 별세

지난 2005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신고 첫날 전북도청 민원실을 찾아 진상조사 신청서를 접수하는 모습. 오른쪽이 최희순 할머니. 전북일보 자료사진.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를 입은 최희순 할머니가 지난 11일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1931년 태어난 최 할머니는 지금의 성심여고 자리 전주 혜성심상소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4년 일본인 교사의 강압에 못 이겨 영문도 모른 채 친구들 6명과 함께 길을 떠났다. 당시 전주에서 50명, 전북에서 모두 100명이 이른바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현해탄을 건넜다. 도착한 곳은 당시 일본 군수산업의 중심지였던 도야마의 후지코시의 비행기 부품공장. 한 달 동안의 군사훈련, 그리고 작업장에서는 혹독한 추위와 격무에 시달렸다. 

최 할머니는 생전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근로정신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앞장서 왔다.

최 할머니는 당시 공장에서 일했던 23명과 함께 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나섰다. 일본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2003년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를 상대로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1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했다. 최 할머니와 피해자들은 지난 2013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후지코시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2019년 1월)에서 승소했지만,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6년에는 전북도의회에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 조례 세미나에도 출석해 아픈 삶을 증언하기도 했다. 지옥같은 시간을 보상 받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은 결국 생전에 보지 못한 채 영면했다. 일본 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낸 원고 중 생존자는 7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완주군 한길장례식장 1층 1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3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완주공원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