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그 이름, ‘타 작물 재배’

권형진 감동컴퍼니 대표

유난히 뜨거웠던 한 여름의 무더위를 뒤로 한 채 황금 물결이 넘실대는 추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노란 빛으로 물들어가는 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작년 기준 수확기 쌀 공급 과잉 물량은 31만 톤으로 추정 되었으나 정부는 수확기가 끝나갈 무렵 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격리 발표조차 하지 않아 애를 태웠다. 때문에 각 농민단체와 민간RPC협회 등은 쌀 과잉 생산에 따른 정부의 시장격리 촉구 운동을 벌이며, 도로에 나락을 붓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하기도 했다. 올해 1월이 돼서야 20만톤의 시장격리 발표가 이루어졌고, 5월에 2차(12만 6천톤), 7월 3차(10만톤)격리 조치가 잇따라 나오면서 정부의 늑장 대응에 농민 단체의 불신만 더 커지게 된 셈이다.

올해 추수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농심(農心)을 달래기 위해 쌀 시장격리를 서둘러 결정했다. 작년 대비 3개월 정도 빠른 결정이며, 총 45만톤 중 구곡 10만톤이 포함 되었으며 이는 유례 없는 규모라고 언론은 떠들썩했다. 쌀 과잉 생산과 수급 안정을 위한 격리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재작년엔 흉년으로 부족했다가, 작년과 올해는 풍년으로 쌀이 남아돌면서 쌀 과잉 생산으로 시장격리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후 위기와 쌀 소비량 감소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타 작물 재배 정책의 이유도 분명 한몫할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쌀 수급 조절을 위해 ‘타 작물 재배’를 권장해 왔다. 논에 벼 이외의 작물(콩, 밀, 보리 등)을 재배한 농업인에게는 일정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었으며, 벼를 수매할 때도 RPC에서 우선적으로 매입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농민들에게 잠시 달콤함만 줄 뿐, 결국엔 쓰디쓴 정책으로 회귀하고 만 것이다. 타 작물 재배를 하면 농민들의 일시적 소득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과는 벼의 수확량이 그만큼 줄기 때문에 이 벼로 도정을 하게 되면 미질이 떨어져 벼를 제 값에 수매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르게 보면 쌉싸름한 정책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정부에서는 2019년부터는 휴경을 해도 타 작물 재배를 하면 보조금을 지급해 주었으나 2021년 부터는 사업 축소를 이유로 농가 중 절반 이상이 보조금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타 작물 재배를 했던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진 건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수확기 임에도 벼가 부족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공매를 외치기 시작했고, 결국 수확기 중 정부 공공비축미를 공매로 방출하는 일도 생겨났다. 타 작물 재배 정책이 실패함으로써 농민들은 다시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작년과 올해는 다시 벼농사가 풍년이 되었다. 물론 기후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올해 같은 경우 작황도 무난해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겨울, 전북 민간RPC협회와 함께 쌀산업 관련 간담회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한 참석자가 “벼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쌀 값 올리기는 쉽지 않다”며, “민간RPC가 살아남으려면 도정업 뿐만 아니라 가공업 또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던 기억이 난다. 

수 년째 반복 되어 왔던 정책보다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 늘 해 왔던 시장격리, 타작물재배 정책 보다는 새로운 정책으로 농민들과 RPC등 쌀 관련업에 종사하는 분들께 신선한 기운을 불어 넣어 줄 때다. 농민에게는 농업의 자부심과 안정된 소득 향상을, RPC에게는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기회가 마련 되었으면 한다. 

/권형진 농업회사법인 감동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