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축제가 쏟아지고 있다. 위태로웠던 코로나 시국을 건너 살아남은 축제의 행렬이다. 축제가 도시 마케팅의 통로가 된 지 오래. 국내외를 막론하고 축제는 이제 도시를 알리고 상징하는 중심이 되었다.
축제의 연원은 길다. 다만 시대를 거치면서 그 기능이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의 축제가 일상에서 엄격히 지켜져 왔던 질서와 권위, 사회적 위계질서의 효력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제의나 놀이의 개념이었다면, 오늘의 축제는 문화산업으로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과 시간의 의미를 부여한다.
축제로 도시를 알리고 성장시킨 예는 얼마든지 많다. 문화산업으로 축제를 발전시킨 덕분이다. 축제로 성장한 도시는 아무래도 유럽이 먼저다. 축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는 하나같이 원시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문화시장으로 기능을 하는 유럽의 축제들은 시대에 맞춰 진화하면서 오늘의 문화산업을 주도한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국제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축제만 수백여 종, 내용도 형식도 다양하다. 축제를 산업으로 이어낸 유럽의 도시들은 축제에 쏟는 공력이 대단하다. 축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시대적 흐름을 선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 덕분에 중세기를 거치면서 더욱 세련되고 지적인 형식으로 발전된 유럽의 축제는 20세기 들어서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위력의 문화적 힘을 과시하는 시장을 형성했다.
주목할만한 특징이 있다. 성공한 유럽의 축제 중에는 음악을 중심에 세운 공연예술축제가 많다는 사실이다. 오래된 문화적 전통과 자산을 축제로 이어낸 결실이다. 1백 년을 훌쩍 넘긴 역사만으로도 관심을 모으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축제나 이탈리아의 베로나 축제는 대표적인 예다. 수준 높은 오페라 무대와 잘 기획된 공연 프로그램으로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이들 축제는 이미 오래전에 도시를 먹여살리는 이른바 산업이 됐다.
우리나라의 축제도 전통이 깊다. 그러나 산업으로서의 축제는 1990년대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역축제들이다. 산업화의 통로로 기능하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던 자치단체들은 크고 작은 축제를 쏟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축제는 많지 않다. 지역의 전통과 자산을 내세우면서도 지역적 정체성과 축제의 독창성을 살리지 못한 탓이다.
우리 지역에도 많은 축제가 있다. 대부분이 지역적 특성을 앞세워 산업화를 기대하며 만들어낸 축제들이지만 역시 산업화에 성공한 축제는 많지 않다. 성장을 멈춰버린 지역축제들이 관행에 의지한 채 산업화를 외쳐대는 현실이 안타깝다. /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