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과 할머니의 소송

일러스트/정윤성

열두 살 옥순이 일본 근로정신대에 끌려간 것은 19454월이었다. 학교는 제비뽑기로 강제 동원에 차출될 아이들을 정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옥순이도 제비뽑기로 일본에 끌려갔다. 옥순이 일했던 곳은 일본의 전범 기업인 후지코시 공장. 항공기의 부품과 탄피 등을 만드는 군수공장이었다.

근로정신대는 일제강점기, 학교나 마을 단위로 차출되어 일본에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여성들을 이른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말기,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법령까지 만들어 여성들의 강제 동원을 합법화했다. 법령에 제시된 대상은 12~40세의 배우자 없는 여성이었지만 일본의 군수공장에 동원됐던 근로정신대는 어린 소녀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미쓰비시중공업과 후지코시, 도쿄 아사이토 누마즈 등 일본의 군수공장에 끌려갔던 조선의 소녀들은 1,700여 명. 강제 동원됐던 소녀들은 해방이 되고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년 가까이, 또는 1년이 넘게 고통스러운 노동 현장에서 시달렸지만,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였다. 게다가 고향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일본 기업의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그들을 역시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일본군위안부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4년이다. 이후 여러 차례의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으나 일본 최고 재판소는 결국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강제 연행과 강제노동, 임금 미지급 등의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이 판결로 미쓰비시중공업도 협상에 나섰지만 끝내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법정투쟁도 순탄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8년 우여곡절 끝에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최종적으로 확정판결했지만 이후 국면은 반전됐다. 지금은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의 전범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93세로 세상을 떠난 김옥순 할머니도 생전에 전범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이어왔다. 할머니가 손해배상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15. 4년 뒤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냈지만, 후지코시 쪽이 상고해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강제로 끌려가 고통스러운 노동에 시달리고도 임금 한 푼 못 받은 피해자들이 일본 최고 재판소로부터 사실을 인정받고도 정작 보상은 받지 못한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옥순 할머니는 꿈에 그리던 고향 군산에 돌아와 묻혔다. 배상도 사과도 받지 못한 할머니의 죽음이 우리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