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과 막걸리

일러스트/정윤성

산자락이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의 계절이다. 파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오색빛깔을 뽐내는 단풍이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온다. 새색시 볼처럼 붉게 물든 가을산에는 어김없이 등산객이 몰린다.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는 나들이객도 북적인다. 단풍 산행을 마친 등산객이나 여행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는 그 지역의 대표 막걸리를 맛보는 일이다. 이맘때 단풍명소에 가면 가을산처럼 얼굴이 불그스레 물든 나들이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막걸리는 지금이 제철이다. 햅쌀이 나오는 수확의 계절, 단풍철이자 막걸리의 계절이기도 하다. 건조한 날씨에 온갖 곡식이 익는 이 계절에 곡주도 가장 맛있게 익는다.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은 ‘막걸리의 날’이다. 2011년에 한국막걸리협회와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업 활성화와 전통주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해 제정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처럼 우리 전통술을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자는 취지다. 막걸리의 날에 맞춰 햅쌀막걸리도 출시된다. 막걸리의 날은 올해로 11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반응은 ‘술에 물 탄 듯’ 미지근하다. 애주가들조차 이 기념일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10여 년 전 국내에 막걸리 붐이 일면서 주류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식을 것 같지 않았던 인기는 유통기한이 있었고, 막걸리 산업은 또다시 정체됐다.

사실 ‘막걸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바로 전주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우리 쌀과 깨끗한 물로 만들어진 전주막걸리는 2000년대 초반  막걸리 붐을 등에 업고 상한가를 달렸고, 2009년에는 일본에 수출 길을 열기도 했다. 삼천동과 서신동에 조성된 막걸리 골목은 푸짐한 한상 차림 안주와 함께 입소문이 나면서 음식창의도시 전주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한옥마을에 들어선 전주 전통술박물관은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전주시는 이 같은 붐을 이어가기 위해 막걸리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조업체에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예산 지원을 받은 유명 주조업체가 원산지를 속이고 수입쌀로 빚은 막걸리를 판매하다 검찰에 적발돼 전주막걸리의 이미지에 타격을 받기도 했다.

최근 침체된 국내 막걸리 시장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젊은 세대가 막걸리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업체에서도 MZ 세대의 취향에 맞춰 신제품을 개발하고, 젊은 감성을 강조한 이색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고가의 프리미엄 막걸리도 뜨고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전주시는 막걸리 골목 활성화 방안을 찾기 위해 행정력을 쏟으면서 지역주민·상인들과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막걸리 축제’를 열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지자체는 동력을 잃었다. 이제 그 동력을 되살려 막걸리 부활의 신호탄을 올려야 할 때다. 쌀산업 위기의 시대, 곡창 전북에서 우리 쌀로 빚은 전주막걸리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 본다.

/ 김종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