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이어지는 성경의 전도서는 이스라엘 3대 왕 솔로몬이 했던 말이다. 솔로몬은 권력과 돈, 여자를 다 가진 것으로 유명한데 그마저도 인생 말년에 "인생은 헛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첫 마디도 바로 자신이 헛된 것을 추구했다는거였다. 지난 20일 석방된 유 전 본부장의 첫 마디는 “의리? 이 세계는 그런 게 없더라. 내가 착각 속에 살았던 거 같다. 구치소에서 1년 명상하면서 깨달은 게 참 많다. ‘너무 헛된 것을 쫓아다녔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는 폭탄 발언이 이어졌다.
폭로한 내용의 진위 문제는 별개로 하고 대장동 의혹 수사가 시작된 지난해 9월 압수수색 당시 창밖으로 휴대전화를 던진 이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해선 입을 열지 않은 채 ‘의리’를 지켜왔던 그가 이젠 판도라의 상자를 마구 열어 젖히고 있다. 형님, 아우로 통하는 끈끈한 동지인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착각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거다. 가히 판도라의 상자라고 할만하다. 정치권에 얼마나 휘발성이 강한 뇌관이 될지는 불문가지다. 대선 자금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대선 자금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상도동에서 YS 최측근으로 활동했던 서석재 전 의원이 뻥긋했던 노태우 비자금 파동은 결국 박계동 전 의원의 폭로를 거쳐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결론까지 이어진 바 있다. 이제 여야 어느 쪽이든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제로섬 게임에 돌입했다. 중앙정계에서의 대혈투이지만 지역사회에 미칠 파장도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해 대선 경선때 도내 민주당 지역위원장들은 이재명, 이낙연, 정세균 등으로 분화돼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겉으론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자신의 정치적 생존 해법을 찾아 이리뛰고 저리뛰었음은 물론이다. 유동규의 말 한마디에 따라서 향후 민주당내 정치역학 구도는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 상반기 전주을 재보궐 선거,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도내 의원들은 물론, 잠재적 후보군들은 당분간 유동규가 열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철저히 정치적 이해득실과 친소관계에 따라 이뤄지는 공천가도를 생각하면 어느 누가 유리할지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다. 어제는 10∙26 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박정희를 시해했고, 그보다 꼭 70년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면서 역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꿨다. 과연 유동규의 세치 혀는 현재의 안개정국을 어떤 파국으로 몰아갈까? 심히 염려되고 궁금할 따름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