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가을을 보내며

허경옥 수필가

아침, 저녁으로 온도 차가 많이 나는 것을 보니 겨울이 가깝게 와 있다는 신호다. 언제나 이맘 때 쯤 되면 지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가슴을 파고 든다.

학교에서 집까지 십리 길인 4km를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앞마당에는 엄마가 자신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콩 다발을 머리에 이고 와서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그리고 땅거미가 짙은 방문 앞은 아직도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채 나를 맞이했다. 아마도 엄마는 지금 뒷산 너머에 있는 다랑이 밭에서 고추를 따거나 고구마를 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얼른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단숨에 뒷동산에 올라 엄마를 소리쳐 불러본다. 그러면 어디선가 내 소리를 듣고 구부린 허리를 펴며 손짓한다.

오전에는 고구마를 캐고 오후에는 고춧대를 뽑는 중이란다. 배고프고 춥다고 투정 부리려다가도 엄마의 곱은 손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기억들이 새록인다. 일 년을 땀 흘려 지은 농작물인데 서리 내리기 전 수확을 해야 한다고 엄마의 굽은 허리의 뒷모습에 투정은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걸려 있는 호박이 나의 시선을 끈다.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호박은 어머니에게 아주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 때는 알지 못했지만  호박이 얼마나 영양가가 높은지를 이제는 알았다. 그러나 그 때는 참으로 지겨웠었다. 날이면 날마다 올라오는 호박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때는 모두가 가난했었다. 부식이 따로 있지 않았으며 주식인 곡식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던 시기다. 그러니 반찬은 어머니 손수 마련하여야 하였다. 자투리땅에는 빠짐없이 심어진 호박은 어머니의 땀이 밴 반찬이 된 것이다.

어머니의 손은 마법의 손이었다. 어머니의 손이 닿는 것은 다 보물로 바뀌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만능인이었다.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다 그런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그 것이 모두 다 어머니의 땀과 노력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호박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어머니에게 있어선 호박마저도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였다. 가난한 살림에 무엇 하나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먹을 식구는 많고 먹을거리는 부족하니 난감 했다. 이런때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지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어린 마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내가 부모가 되니, 어머니의 절박하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6남매를 혼자서 키우신 어머니. 호박도 그러하지 않은가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식물. 지금은 늙은 호박을 거두어들일 때다. 여린 호박은 부치고 나물하고, 중간호박은 된장찌개용, 어디 그뿐인가 호박잎으로 쌈 싸서 먹고 가을철에는 쌀뜬물 받아 으깨 국 끓이면 찬 바람 불어오는 늦가을엔 그 맛이 일품이었지.

인생의 황혼기처럼 늙은 호박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다 주고 있다. 호박즙, 떡, 엿, 식혜, 무궁무진한 게 호박인 것 같다. 주고 또 주어도 아깝지 않은… 우리 어머니도 이 호박과 같은 삶이 아니었을런지? 

나도 이제는 두 자녀의 어머니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지금도 하늘에서 응원해 주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오늘은 호박으로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허경옥 수필가는 교직에서 정년을 하고 지금은 전북 노인일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북문학관 아카데미에서 문예창작을 수강하고 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