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판지'라고 불리던 폐골판지가 경기 침체, 택배수요 감소 등에 따라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폐골판지는 재활용률이 평균 80%에 달하지만 재고량이 2배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넘치는 재고량에 소각을 고민하고 있을 상황에서 폐골판지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들이 있어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문화통신사협동조합은 제2회 전라북도사회적경제박람회에서 종이 박스로 제작한 기부 자판기 '신묘한 자판기'를 선보여 화제다.
볼품없이 버려진 종이 박스는 지역 시각예술가들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났다. 엉성한 듯하지만 자판기는 '현금 투입구'와 '상품 나오는 곳'을 갖추고 있는 온전한 형태다.
현금 투입구에 현금을 넣으면 상품 나오는 곳으로 자판기 내부에 있는 사람이 직접 과자를 내어 주는 방식이다. 모인 현금은 연말 취약계층 연탄 기부에 활용하고, 참여자에게는 작은 지역 문화예술 상품을 선물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김지훈 대표는 "단순히 '놀이', '호기심'으로 참여했던 관람객들이 기부 소식을 듣고 더 많은 돈을 넣기도 하고, 따로 보태고 싶다고 돈을 건네기도 했다. 놀이로 시작한 일이 한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종이 자판기를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판기 내부에서 사람이 직접 커피를 건네며 따듯한 말 한마디를 전하거나 감정 코인을 도입해 자판기에 넣으면 사람이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는 등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며 폐골판지 활용 아이디어를 나열하기도 했다.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문화통신사협동조합은 시각예술가 모집, 기후위기 극복이나 지역사회 발전에 조언을 줄 수 있는 ESG 전문가를 초정해 다음 주부터 폐골판지 활용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들과 만든 종이 자판기는 12월 남노송동 마을 축제, 연말 시내 거리 등에서 선보인다.
김 대표는 "전주에 전주 페이퍼가 있고, 폐골판지 재고량이 많다고 하니 폐골판지 활용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주에서 종이 자판기 문화가 형성되고, 지역사회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좋은 반응을 보여 주시는 참여자들과 종이 자판기에 뜻을 더해 주시는 예술인 등이 있어 저희도 더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