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그리는 전북인

황이택 전 언론인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즐거움은 그 나라의 풍광을 구경하는 것이 첫째이고, 다음은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체험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 한다면 우리나라의 문물이 그 나라에 스며들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눈여겨보는 것일 게다. 이런 면에서 최근 한 달간 다녀온 호주 여행은 즐거움과 함께 우리 고향과 나라에 대해 애정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여행이었고 굳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와 계절이 정반대인 태평양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의 광활한 대륙의 이색적인 경관을 구경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원주민을 배려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후손을 위해 자원을 아껴 사용하는 호주인들의 생활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또한 이 나라 구석구석을 누비고 달리는 우리의 자동차와 대형 쇼핑몰마다 진열된 TV, 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김치와 라면은 여행을 더욱 즐겁고 맛나게 했다. 

그러나 호주 여행에 화룡점정을 찍게 한 것은 또 다른 곳에 있었다. 어느 날 지인과 함께 시드니 한국문화원의 미술전시회장을 찾았다. 이 전시회는 호주 전역에서 500여 명이 출품한 작품 중 60여 점을 엄선해 전시하고 그 중에서 최우수작을 뽑아 시상하는 자리였다. 그러기에 시상식장에는 호주의 미술계 인사와 입선 작가는 물론 축하하러 나온 가족과 친구들로 성황을 이뤘다. 호주의 저명한 미술가와 교수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기에 이 대회가 권위를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최우수작에 주는 상금이 호주에서는 드물게 2만 달러나 되어서 이 대회에 입선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여긴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이날 최우수상을 받은 호주 여성화가 Sonia Martignon이 감격에 겨워 수상 소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에서 이 상의 권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관하는 한호문화예술재단(The Korea-Australia Arts Foundation, KAAF)을 설립하고 아홉 번째로 이 행사를 치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전북 출신의 여류화가 이호임 회장(71)이라는 것이었다.

여류화가 이호임 회장.

부안 출신의 이 회장은 전주여고(42회·71년 졸업)와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미술교사를 하다가 지난 86년 사업을 하는 남편과 호주로 이민을 갔다. 이민 후에도 미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식지 않은 이 회장은 이곳 대학에서 미술 관련 공부를 10년 동안 계속했으며, 현재는 호주의 NSW 주립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2006년 호주 한인여성미술협회(Korean Women’s Art Society Sydney, KWASS)를 설립해 회원들과 작품 활동을 하면서 호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고 기량을 증진하는데 헌신했다. 한인여성미술협회는 현재 60여명의 회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0여 년 전에는 한국과 호주의 미술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열정으로 KAAF를 설립하고 한인뿐 아니라 호주 전역의 미술가들을 대상으로 미술대전을 개최하기 시작,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이했고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 미술대전은 해를 거듭할수록 호주 미술인들로부터 큰 호응과 권위를 인정받아 응모자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올해에는 모두 550여점이 출품되어 이중 60점이 입선되었는데, 이 중 한인교포작품은 3점이고 나머지 모두는 호주인 작품일 정도로 호주인의 호응도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한호예술재단을 호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단체로 발전시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과 거액의 사재 출연도 뒤따랐다는 게 이 회장을 잘 아는 미술인들의 이야기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가족과 한인교포 특히 고향 선후배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편 사업을 하는 이 회장의 부군 서유석씨도 주 호주 한인회장을 역임하면서 교포들로부터 신뢰와 덕망을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행 중 뜻밖에 만난 고향의 훌륭한 인재가 자랑스럽고 전북인의 긍지를 갖게 했다.

또한 문화 예술의 힘이 국력이라고 하는 21세기 예(藝)도임을 자처하는 전라북도와 각 자치단체들이 세계 곳곳, 각 분야에서 이호임 회장처럼 고향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는 숨은 인물들을 찾아 표창하고 격려하는데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해 본다. 

/황이택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