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주 행원

행원 안 작은 무대

전주 풍남문을 뒤로하고 30m쯤 걷다 보면 우측 골목에 "행원"이란 나지막한 전통 한옥 카페가 있다. 필자에게도 36년 전 어설픈 국악을 뽐내며 드나들던 추억이 담긴 곳. 지금은 전주 미래유산 제1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악인의 음악회가 열리는 전주 전통예술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94여 년 전인 1928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행원은 원래 '낙원권번'이란 전주국악원이 있던 자리였다. 그러한 건물을 1942년 전주의 여류 화가인 남전(藍田) 허산옥(1926~1993)이 인수하였고 전주를 대표하는 요정(料亭)으로 탈바꿈하여 오랜 시간을 보냈다. 건물 앞마당에 정원을 둔 행원은 우리나라 전통 구조와 달리 ‘ㄷ자’ 건물 안쪽에 작은 연못과 정원을 둔 일본식 한옥으로 설계되어 독특한 일본식 한옥 구조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전주 풍남문 인근에 있어 서울의 '삼청각'처럼 지방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기업인 등 지역 유지들의 연회 장소로 많이 활용되기도 했다. 정치인과 기업인 등 지역 유지들이 자주 애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주의 대표적인 요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던 '행원'은 한편으로는 예술가들의 슬픈 역사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국악 활동 중 생계 자체가 어렵거나 피난을 온 내로라하는 당대의 예술인들을 후원하였고 창작활동에도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행원은 많은 예술인의 방문이 있었고 식객들이 줄을 이었다. 1983년 무렵, 전북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 성준숙 명창으로 주인이 다시금 바뀌면서 2000년대 중반, 사라진 요정문화를 현대에 맞게 되살린 한정식 음식점으로 탈바꿈한다. 전통음악과 춤의 명맥을 이으며 옛 전통문화를 복원한 한정식집 행원은 건전한 국악공연을 보며 식사할 수 있는 '전주의 풍류 명소'로서 그 명성을 이어갔다. 그러한 요정에서 한정식집으로 이어온 행원은 이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장소에서 벗어나 전통문화의 시대정신으로 잇고 있는 한옥 카페로 현재 변모해 있다.

과거 요정이란 의미를 돌이켜보면 어원적 의미인 "고급 요릿집"을 별개로 우리는 은밀하고 퇴폐적인 장소로 인식하여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의 장소로만 그 뜻을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역사를 말살하던 일본은 한민족 전통예술의 가치도 펌하하려 조선 궁중의 음악 및 무용을 관장하던 장악원이란 조직을 이왕직아악부란 명(名)으로 축소,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게 했던 슬픈 과거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궁 밖의 민간 전통예술도 식민사관에 의해 하대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러한 이유로 민간 전통예술가들 또한 설 자리를 잃고 경제적인 이유로 요정이란 장소에서 삶을 유지하기에 이른다. 전문 극장이나 동네 판의 무대를 떠나 어려운 삶을 전전했던 시대 그리고 전통예술가들의 고된 삶이 녹아있는 ‘요정’이란 슬픈 역사의 현장. 이제 그러한 역사와 현장 속에서 녹록지 않은 차 한잔을 마시며 우리 전통예술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다시는 그러한 역사와 현장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