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자녀들이 부모님께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손자 손녀를 안겨 드리는 것이라 한다. 우리 부모들이 손자를 사랑했듯이 그 아들도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내리사랑의 본능이다. 그런데 손자 손녀들은 사랑한 만큼 걱정거리도 늘어난다. 자녀들을 결혼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았는 데 식구가 늘어날수록 걱정거리가 많아진다. 왜일까? 아마 고유의 전통인 그 내리사랑이 아닌가 싶다.
가끔 손녀와 만날 때면 '할아버지' 하고 덥석 품에 안긴다. 그리고는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하며 큰절을 한다. 그러면 나는 인사의 댓가로 천 원씩을 주었는데 요즈음엔 화폐가치에 따라 5천원, 만원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즐거움은 과자 사주기다.
용돈을 주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저금통에 저축하는 버릇을 키워주기 위함이요, 초콜릿 등의 과자를 사주는 것은 제 부모들이 건강상 금지하는 것이지만 내 어릴 적 추억 때문에 '할애비라도 그 맛을 보이려는 애련한 마음' 때문이다.
손자 손녀들이 오면 반갑기도 하지만 잔잔한 태풍이 지나가는 것처럼 번잡스럽다. 그래서 오죽해야 손자 손녀들이 있는 집에서는 '오는 것도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는 말 까지 나왔을까? 이런 상황도 모르고 철부지인 그들은 여러 가지로 아양을 떨며, "할아버지, 우리들이 할아버지 집에서 자면 무엇을 해주실 거에요?"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선뜻 "응, 원하는 것 있으면 말해 봐, 다 해줘야지"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해 줘도 아깝지가 않다. 이런 마음은 비록 나뿐이 아니고 이 나라 모든 할아버지들의 마음이리라 생각한다.
손녀 '수원'이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보니 외할머니가 엄마였으며, 부모 생각에 울 때도 있지만 우리 집이 오히려 자기 집보다 편한 것 같다. 하지만 여덟 살이 되어 의사 표현이 가능한 이후로는 저 혼자 자겠다고 독립 선언을 해서 놀라웠다. 밤중에 울음보가 터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앞섰지만 지금까지 약속을 잘 이행하며 지낸다.
아마 저희 부모들이 만날 때마다 아이들을 잘 타이른 결과일 것이라 생각하며 에미 애비가 참으로 고마웠다. 그래도 우리와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나며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얻어진 값진 경사다.
어느날 큰 에미가 손녀들의 꼬까옷을 사 왔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다며 바꿔 달라고 조른다. 그래서 자전거에 태우고 백화점을 갔는데 허리를 꽉 붙든 손녀와 할애비의 대화가 자전거 바퀴처럼 오롯해 감격스러웠다. 손녀가 과자를 사달라고 졸라 백화점 옆 상점을 갔는데 동생 몫까지 챙긴다. 둘은 싸움도 잘하지만 한 시도 떨어질 수 없는 친구요 경쟁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허리 꽉 붙잡은 손녀가 과자는 할아버지가 사 줬다고 해야 한다기에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불량한 장사치들의 얄미운 상혼은 언제쯤 정화되어 아이들이 건강 걱정 없이 자유롭게 그 좋아하는 과자를 사 먹을 날이 올까?
나는 손자 손녀들을 보면서 밝은 미래가 점쳐지는 것 같아 우리나라의 장래가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음은 환희의 금빛이 되면서 씩씩하고, 명랑하게, 그리고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특히 독서를 많이 하는 어린이가 되어달라고 '할애비의 바람'을 주문해 본다.
전재욱은 전북시인협회, 미당문학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석정문학회, 표현문학회, 전북문예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민들레 촛불>, <가시나무새>, <미래의 목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