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노래하라”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

서울에서 기업체를 경영하며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해온 나래코리아 김생기 대표는 전주국제영화제를 축하하며 사비를 들여 음악회를 준비해왔었다. 5년 전 쯤, 처음으로 ‘나래 코리아 음악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새롭다. 공연의 즐거움이 무르익어 가면서 나는 노래 한곡에 꽂혀 뭉클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상규 시, 정애련 곡 「진달래」라는 가곡을 김민지 소프라노가 정말 아련하게 불렀다. ‘먼산 진달래 필 때면 텅빈 가슴 설움만 남아 이별의 아픔 곱게 물들어 갑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우리 가곡을 듣고 여운이 남았다. 「진달래」는 나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성악클래스로 이끌었다. 나래코리아 콘서트에서 인사를 나눈 정애련 작곡가가 악보를 보내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로부터 4번의 겨울을 맞이하는 동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송주희 교수의 지도로 한곡 한곡 계절과 정서와 감성이 이끄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가고파, 수선화, 목련화, 그리운 금강산, 보리밭, 동무생각, 장안사 등 익숙한 노래도 다시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다. 아, 동심초의 애잔함을 그때는 왜 몰랐던가, 노래를 하다보면 가만가만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첫사랑, 별을 캐는 밤과 같은 새로운 곡도 좋았다. 내 맘의 강물, 강건너 봄이 오듯…… 좋은 노래, 배우고 싶은 노래는 끝이 없다. 블루 코로나의 우울함 속에서, 노래는 유일한 기쁨이었다. 

지난 가을, 동문수학하는 사람들끼리 코로나 19 이후 중단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노래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익힌 기량을 확인하는 학습의 연장선에서 발표의 장을 갖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201호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한 음악회이지만 그래도 부담감은 크다. 오랫동안 교육을 받고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은 역시 자신감이 있다. 나로서는 처음 참여하는 음악회인데 하필 그 즈음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시기여서 노래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다. 그날 참석한 스물네분의 출연자 중 유독 한 출연자가 가슴에 와 닿았다. 82세의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검은색 무대복이 반짝반짝 빛났다. 수선화를 선택한 그 분은 가녀린 몸을 보면대에 의지해 “노래 부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수줍게 말했다. 마른 몸, 건조한 성대, ‘찬 바람에 쓸쓸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에서는 노년의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노래는 클라이막스를 향한다.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부분에서는 목소리가 잠겨서 꺽꺽 힘들어했다. 보는 나도 안타까웠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삶의 서사가 펼쳐지면서 그분의 일생이 목구멍에서 세상으로 나와서 하염없이 메아리친다.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영혼을 다해 부르는 노래, 그래서 그분의 노래는 ‘잘했다, 못했다’ 평가할 수 없는 경건함이 있었다. 

아, 그날 이후 나는 “노래를 잘 해야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대신 노래 한곡이라도 정성스럽게, 행복하게 불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삶을 노래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인생이 아닌가. 나를 노래의 날개로 인도해준 인연에 감사한다.

/김사은 전북원음방송PD

 

△김사은 PD는 수필가이며 중부대학교 겸임교수와 전북여류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