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젊은이를 죽음으로 밀었나

이흥래 전 언론인

지난 설 연휴, 오래동안 알았던 분으로부터 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장수 농협에 다니고 있던 아들이 직장내 괴롭힘에 항의해 얼마전 자신의 일터 앞에 세워 둔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 아들은  당시 신혼 3개월의 새 신랑이었는데 직장 상사들을 거명하며 괴롭힘 때문에 죽는다는 유서를 남겼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레슬링 도내 대표등을 지냈던 신체건장한 젊은이가 얼마나 괴롭힘이 심했으면 목숨을 끊을 수 있었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후 자료들을 확인하고 언론계 후배들과 연락해 연휴 뒷날 기자회견을 갖게 하므로서 묻혀있었던 이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은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젊은이는 귀한 목숨을 끊어야 했단 말인가. 그 부모가 보여준 자료를 보면 수년 동안 직장을 자랑스럽게 다녔던 그 아들은 불과 1년 전 한 상사가 부임해 오면서 그와의 악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만나는 순간 잘못 찍혔던 죄 하나가 계속 이어지면서 그는 하고헌 날 그 상사와 무리를 이룬 일파들의 밥(?)이 되었다고 한다. 업무든 아니든 이미 그 상사들의 눈 밖에 났던 그는 수시로 질책과 압력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한다. 또 일생에 중대한 결혼을 앞두고도 축하는 커녕 바쁜데 왜 날짜를 그렇게 잡았냐고 흉을 봤으며 상사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발생한 조합의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급기야 그 젊은이는 결혼을 앞두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는데도 조합이 이런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더욱 애통해 했었다. 

 

물론 직장내 괴롭힘의 당사자로 지목된 그 상사들은 그런 정도의 지적이나 질책이 무슨 괴롭힘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땐 의례히 통용되던 그런 관습이나 행태가 지금은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직장내 공평하지 못한 업무 지시나 차별 그리고 편파적이거나 부당한 처우는 그야마로 빼도 박도 못하는 괴롭힘 사례라고 한다. 이 젊은이가 겪어야 했던 그런 사례들은 전형적인 괴롭힘이었고 그가 남겨 놓은 수많은 자료들은 그런 실태를 적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밉든 곱든 부하직원의 결혼식에 참석은 커녕 단돈 몇 만원의 축의금도 주지 않은 걸 보면 그들의 항변이 별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해못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직원이 괴롭다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는데 조사나온 노무사는 직장내 괴롭힘이 없었다고 했고 장수농협은 옳소하고 맞장구를 쳤다. 가해자와 잘 아는 노무사가 아니라면 가능했을까. 참 해괴한 일이다. 또 장수경찰의 태도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미 자살을 시도했다 구출됐던 사람이 자신의 일터 앞에서 직장내 괴롭힘 때문에 죽는다고 써놓았는데도 타살의 흔적이 없으니 우리 소관이 아니라고 탈탈 털어버려야 옳았을까. 또 동네 강아지만 죽어도 뉴스가 되는 판에 이런 사건이 났는대도 장수지역 언론들은 어찌 한결같이 보도를 하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폼 재며 살아온 그곳 언론인들에게 이건 과연 뉴스 가치가 없었을까. 보도가 있고난 후 고용노동부장관이 특별근로감독을 지시하는 등 조사와 수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이 제대로 풀릴지 지켜볼 일이다.

/이흥래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