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무더운 날씨와 대형 태풍이 있었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사 풍년이 되었다. 따라서 알알이 익어 고개 숙인 치렁치렁한 추수를 한 농민들의 마음도 풍족하다. 금색으로 물든 가을 들판은 언제나 농부들의 보람이었고 한해 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이었다.
알알이 튼실한 벼 이삭을 만져도 보고 세어도 보며 봄부터 흘린 땀을 잊고 꽃송이처럼 희망에 부풀었다. 이처럼 풍년이 들면 넉넉한 양식을 얻으니 큰 보람 속에 참 좋다. 온 가족이 배불리 먹고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예로부터 우리 농촌에서는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지 않았던가? 흉년이면 한 톨의 알곡을 지키려고 종일 새를 쫓있고 곡간에 드나드는 쥐를 잡으려 온 마을이 '쥐 잡는 날'을 두었던 추억이 머리에 스친다. 세상 누구나 밥은 희망이고 생명이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니던가?
그런데 농민들은 잘된 농사가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왜냐하면 쌀값이 폭락하여 피땀으로 지은 금쪽같은 쌀인데 농비도 안나온다며 수확하려던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물가는 치솟는데 쌀값은 점점 떨어지고 있어 농민의 시름은 커질 수밖에…. 더욱이 공산품 수출에 따른 쌀 수입량이 매년 약 40만 톤이 넘고 농민들이 한 해 생산하는 쌀도 약 350만 톤이라 한다. 여기다가 5년간 정부 수매 비축미도 약 350만 톤 정도가 되어 정부의 곡간도 가득 차 있어 수매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냥 농민들의 생계를 방치할 수는 없다.
또한 시대 조류에 따라 국민의 식생활 문화도 많이 변했다. 밥만 먹던 옛날과는 달리 육류와 빵, 국수, 라면 등 간편한 식품의 소비가 늘다보니 90년대에 1인당 1년에 122kg을 먹던 쌀을 이제는 61kg 정도 소비하니 하루에 500g도 못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원가로 따지면 하루 쌀값이 700원으로 생수 한 병값보다 더 싸다. 그리고 1년간 밀 알곡 약 240만톤과 밀가루 6만 톤을 수입하고 있다하니 1인당 1년 소비량도 34.2kg으로 쌀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처럼 식품 기호가 달라짐에 따라 우리도 밀 재배를 늘려야 하고 가루 쌀 육종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일인데, 문화적, 지리적, 교통의 취약지로 내몰린 우리 농촌을 그냥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래된 비축미는 가축사료로 쓰도록 하고 사료용 곡물 수입은 줄이는 한편, 농촌에서 어렵게 농사짓는 농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농촌 인구는 차츰 감소하고 있고 거기다가 농업인구의 24%이상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니, 앞으로 우리 농촌을 누가 지켜나가야 할 것인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노동력이 없는 농촌, 희망을 잃어가는 농촌으로 변하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다.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만일 곡물 유통이 막히고 세계가 점점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식량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인간의 기본이 의식주인데 식량문제만큼은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할 일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의 귀농 귀촌 환경을 만들고 소출 소득작목을 개발하고, 농촌을 살리고 농민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농촌경제를 재생시킬 특단의 대책이 절대 필요한 때다. 지난날 우리를 지켜온 생명의 쌀이 오늘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음식문화에 밀려 다양한 농작물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므로 수요공급도 개선되어야 할 시기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신팔복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은빛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진안문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의 메아리>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