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고생이 전주의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2017년 1월이었다. 나이 열여덟 살, 죽음의 원인은 ‘자살’이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선택한 취업. 그는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한 이동통신사 고객센터(콜센터) 상담사로 현장실습을 나간 실습생이었다. 근무 부서는 ‘세이브(SAVE)’팀. 해지방어팀으로도 불리는 이 부서는 콜센터 안에서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극심해 많은 사람이 가기를 가장 꺼리는 곳이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고객들의 전화를 최대한 많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 온갖 험한 말과 욕설, 인격모독을 당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배당된 ‘콜(call)수’를 채우고 상품을 많이 팔아 실적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다시 주어지는 과도한 실적과 등수를 매기는 평가와 편법의 임금 체계. 당당하게 맞서 이겨내고자 했으나 강압적 현실이 고통스러웠던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안타까운 사망사건을 담은 영화 <다음 소희>가 2월 초부터 관객들을 맞고 있다. 취업률을 높인다면 어떤 환경이든 관계없이 실습생 받는 기업을 늘리려는 학교, 그런 학교들의 취업률로 ‘인센티브’를 받는 지방교육청, 역시 취업률과 ‘인센티브’에만 목매는 정부와 기업. 영화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 같은 콜센터를 통해 만연된 실적 위주 가치관에 이의를 제기하고 고질적인 병폐를 고발한다.
<다음 소희>는 지난해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이 되어 해외에서 먼저 소개됐다. 그날 상영회에서 영화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세 번이나 쏟아지고 관객들은 흐느꼈다는 화제작이다. 제26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의 폐막작으로도 초청되어 감독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한국 사회의 상황을 담은 이 영화에 외국 관객들이 공감했다는 것은 영화가 가진 ‘보편성의 힘’ 덕분이다.
사실 영화로 마주하는 현실은 잔혹하다. 콜센터 종사자들의 노동권과 인권, 실적만 앞세워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존중받지 못하는 청소년 노동권 등 마주하는 모든 현실이 다 그렇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인데도 보고만 있었던’ 대가여서 더 잔혹하다. 여고생의 죽음을 우리 앞에 꺼내놓은 영화의 힘이 그래서 더 새삼스러워진다.
<다음 소희>는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이슈에 주목해온 정주리 감독이 ‘이제 더는 다음 소희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담아 제목으로 삼았다. 감독의 바람처럼 영화는 잔혹한 현실을 일깨우며 책임을 통감하게 하는 장면과 대사로 짧지 않은 상영 시간 내내 관객을 붙잡아 놓는다. <다음 소희>의 메시지에 더 많은 사람이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이 영화 놓치지 마시라. / 김은정 선임기자